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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단군조선 천년, 그리고 기자조선 천년의 도읍지는 같은 곳으로 경전에서 해가 처음 뜨는 신성구역인 우이(嵎夷)라는 지역으로 신라 역시 고조선을 계승하여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다시 천년왕조를 누린 것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중국 역사서와 경전에 드러난 고조선(단군조선) 건국과 아사달 위치

현재 한국사는 이조시대의 사대주의 정책과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일제 강점기의 식민사관으로 인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식민사관에 길들여진 강단 사학계는 오히려 중국 정사와 경전에서 고조선의 실체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군조선을 한낱 근거 없는 신화에 불과한 것이라고 치부하며 청동기, 혹은 철기시대 운운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또한 재야에서는 조선 상고사의 체계조차도 올바로 정립하지 못하면서 고조선이 강성대국이었다는 전제하에 무분별하게 고조선 도읍지가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고조선 영토가 광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고조선 도읍지 아사달은 한반도에 있었다.
지금 한국의 역사교육은 역사체계가 불분명하여 마치 얼굴 없는 유령을 그려놓고 이것이 한민족의 자화상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다.

역사를 연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료 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
역사자료에도 등급이 있어 국제적으로 검증된 경전과 정사(正史), 그리고 당대 최고의 문장가가 왕명을 받들어 지은 금석문 등에 수록된 자료들이 우선시되고 정확한 것이다.
다행히도 요즘엔 인터넷에 한국사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 있어 편리하게 원전과 번역문을 열람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검증된 사료를 종합해서 살펴볼 때. 단군조선 천년, 그리고 기자조선 천년의 도읍지는 같은 곳으로 경전에서 해가 처음 뜨는 신성구역인 우이(嵎夷)라는 지역으로 신라 역시 고조선을 계승하여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다시 천년왕조를 누린 것이다.
단군 왕검의 고조선 건국에 관해 삼국유사에서 말하였다.


위서(魏書)에서 말하였다.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단군(壇君) 왕검(王儉)이 있었는데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불렀으니 이것은 요()와 같은 시대이다.

고기(古記)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있었는데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탐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산(三危太伯山)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 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환웅에게 주며 가서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고 이른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善惡) 등을 주관하고,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며 인간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 환웅()에게 변화하여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이때 신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형체를 얻게 될 것이다.”
이에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서 먹으며 삼칠일(三七日, 21) 동안 금기(禁忌)했더니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으나 범은 금기를 지키지 못해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웅녀(熊女)는 혼인해서 같이 살 사람이 없으므로 날마다 신단수(壇樹) 아래에서 잉태하기를 기원했다. 환웅이 잠시 변하여 그와 혼인했더니 이내 잉태해서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단군왕검(壇君王儉)이라고 한다.
왕검은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庚寅年)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여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불렀다.


고조선 건국 시기를 요()임금 즉위 25년인 무진년(B.C 2333)이라는 설은 제왕운기조선왕조실록그리고 동국통감(東國通鑑)등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평양은] 본래 3조선의 옛 도읍지이다. 당요(唐堯) 무진년(B.C 2333)에 신인(神人)이 단목(檀木)의 아래에 탄생하니, 나라 사람들이 옹립하여 임금을 삼아 평양에 도읍하고, 단군(檀君)이라 부르니, 이것이 전조선(前朝鮮)이요,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 기자(箕子)를 이 땅에 봉하였으니, 이것이 후조선(後朝鮮)이며, 그의 41대 자손 준() 때에 이르러, ()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망명하여 무리 천여 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준()의 땅을 빼앗아 왕험성(王險城)에 도읍하니, 이것이 위만 조선(衛滿朝鮮)이다.
위만의 손자 우거(右渠)한나라의조명(詔命)을 잘 받들지 아니하매, 한나라 무제 원봉(元封) 2(B.C 109)에 장수를 보내어 이를 쳐서, 진번(眞蕃임둔(臨屯낙랑(樂浪현도(玄菟)4()으로 정하여 유주(幽州)에 예속시켰다.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지리지 평양부
 
평양이 3조선의 도읍지라는 설은 이씨조선 건국 직후에 사대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조정에서 고의로 날조한 것이다.
다시 중국의 정사에 실려 있는 단군조선 관련 사료를 보기로 하자.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전(東夷傳)에서 말하였다.
 
예기(禮記)왕제(王制) 편에 이르기를 동방을 이()라고 한다.” 하였다.
()라는 것은 근본이다. 어질고 생육(生育)하기를 좋아하며 만물이 이 땅을 저촉(觝觸)해서 산출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도리로 다스리기가 쉬우니, 군자국(君子國)과 불사국(不死國)이 있기까지 하다.
동이(東夷)는 아홉 종족이 있으니, 견이畎夷 · 우이于夷 · 방이方夷 · 황이黃夷 · 백이白夷 · 적이赤夷 · 현이玄夷 · 풍이風夷 · 양이陽夷 등이다.
그러므로 공자도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어 하였다.
옛날 요임금이 희중(羲仲)에게 명하여 우이(嵎夷)에 살게 하였다.
이곳을 양곡(暘谷)이라고도 하니 대개 해가 뜨는 곳이다. 찬양한다.
우이(嵎夷)에 궁전을 짓고 사니 곧 양곡(暘谷)이라 한다.
산과 바다에 읍락을 이루고 사는 것을 구이(九夷)로 구분하였다.
 
송나라 태종의 칙명으로 편찬된태평어람, 조선은 동이(東夷)라고 하였으니, 동이열전은 조선열전과 같은 것이다.
동이의 의미에 관해 예기를 인용하여 동방을 이()라고 한다.”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동이는 동쪽 오랑캐의 나라가 아니라, 아침 해가 처음 뜨는 구역의 지명인 우이(嵎夷)를 동방 또는 동이라고도 한다는 말이다.
문맥을 보면, 동방 동이 구이 우이 양곡 조선 등은 모두 우주에서 처음 태양이 떠오르는 구역의 지명이라는 말이다.
한민족은 아득한 상고시대부터 단군조선 기자조선 그리고 신라 천년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왕조를 초월하여 전통적으로 해 뜨는 구역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동이라고 한 것이다.
이곳은 인류문명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공자가 동경했던 이상향이고, 옛날 요임금도 천하를 다스릴 때 제일 먼저 중신인 희중(羲仲)을 해 뜨는 곳인 우이(嵎夷)에 살게하여 해 뜨는 것을 경건히 맞이하여 절기에 맞춰 봄 농사일을 고르게 다스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조선 도읍지 아사달은 바로 요임금이 희중에게 살게 했던 우이(嵎夷) 지역이라고 하였다.
유교의 경전인 상서에서 말하였다.

희중(羲仲)에게 나누어 명하여 우이(嵎夷)에 살게 하니, 이곳을 양곡(暘谷)이라고도 한다. [()은 거주하는 것이다. 동표(東表)의 땅을 우이(嵎夷)라고 칭한다. ()은 명()인데, 태양이 양곡에서 떠오르면 천하가 밝아지므로 양곡(暘谷)이라고 칭한다. 양곡(暘谷)과 우이(嵎夷)는 동일하다. 희중(羲仲)은 우이에 살면서 동방(東方, 조선)을 다스리는 관직이다.] 떠오르는 해를 경건히 맞이하여 봄 농사를 고르게 다스리도록 하였다. [()은 공경()이고 빈()은 인도하는 질서이다. 한 해가 동방에서 시작되면 비로소 들로 나아가서 경작하는 것을 동작(東作)이라고 한다. 동방의 관직인 희중(羲仲)은 떠오르는 태양을 경건히 인도하고 절기에 따라 봄 농사일을 고르게 다스려 농사일에 힘쓰도록 하는 것이다.]

分命羲仲 宅嵎夷 曰暘谷[宅居也 東表之地 稱嵎夷 暘明也 日出於谷而天下明 故稱暘谷 暘谷嵎夷一也 羲仲居治東方之官] 寅賓出日 平秩東作[寅敬 賓導 秩序也 歲起於東 而始就耕 謂之東作 東方之官 敬導出日 平均次序 東作之事 以務農也]
-상서(尙書)요전(堯典)

동해와 태산(泰山) 사이가 청주(靑州)이다. [동북으로 바다를 점거하고 서남으로는 태산(泰山)에 이른다.] 우이(嵎夷)의 치수가 다스려지고 나니 [우이(嵎夷)는 지명이다. 쓰인 공력이 적었으므로 략()이라 한다.] 이에 유수(濰水)와 치수(淄水)의 옛 물길로 인도하였다. [유수(濰水)와 치수(淄水)의 그 옛 물길을 복구하였다.]

海岱惟靑州 [東北據海 西南距岱] 嵎夷旣略 [嵎夷地名 用功少曰略] 濰淄其道 [濰淄二水 復其故道]
-상서(尙書)우공(禹貢) * 이상 괄호 안은 공안국의 전().

우이(嵎夷)는 지금의 조선 땅이다. 공안국의 전(, 주석), 동해 위의 땅을 우이(嵎夷)라고 칭한다.정의(正義), 청주(靑州)는 동방 경계의 별유천지에 있으므로 표()라고 하여 동표(東表)의 땅이라고 한다.우공추지(禹貢錐指)에는후한서동이전에 의거하여 우이(嵎夷)를 조선 땅이라고 하였다.
대개 조선은 옛날 구주 중에 청주(靑州)에 속하였으며 산동(山東) 등주부(登州府)와 더불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대하고 있으니 공안국 전(), 동표(東表) 땅을 우이(嵎夷)라고 칭한다는 말과 정확히 부합된다.

嵎夷 今朝鮮地 按孔安國傳 東表之地稱嵎夷 正義曰 青州在東界外之畔為表 故云 東表之地 禹貢錐指 援据後漢書 以嵎夷為朝鮮地 蓋朝鮮古屬青州 與今山東登州府 隔海相對 正合孔傳 東表之語
-상서지리금석(尙書地理今釋)

조선(朝鮮) : 동표(東表)의 해 뜨는 땅에 (임금이) 살기 때문에 조선이라 이름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평양부

[해설]
인류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구현하여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요순시대에 요임금이 즉위하여 맨 처음 중신인 희중을 해가 처음 뜨는 신성구역인 우이(嵎夷)에 살게 했다는 말이다.
공안국의 전(), 요임금이 희중을 파견하여 살게 했던 해 뜨는 구역인 우이를 혹은 동표(東表)라고도 하며, 희중은 동방을 다스리는 관직이라고 하였다.
상서우공 편에 하우씨가 천하를 九州로 나눌 때에 우이(嵎夷)는 청주에 속해 있고 청나라에서 간행된 상서지리금석에서도 우이(嵎夷)는 지금의 조선 땅이라고 하였으니 단군조선의 강역은 청주이고, 도읍지인 신시(神市)는 바로 우이(嵎夷)이다.
한서지리지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날에 황제 헌원씨가 재위할 때 배와 수레를 만들어 통행하지 못하는 곳을 건너 천하를 두루 다니면서 사방 만 리로 제정하여 강역을 그어 구주(九州)로 나누니 백 리의 나라 1만 구역을 얻었다.

황제 헌원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 친히 다스리던 강역을 처음 사방 만 리로 제정하여 강역을 그어 구주(九州)로 나누었다고 하였고, 회남자에서는 12천리라고 하였으니, 단군조선 강역에 해당하는 청주 역시 사방 12천리의 광대한 영토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렇게 볼때 서쪽으로 산동성 태산으로부터 동쪽으로 일본 해역에 이르기까지 둥북아 일대가 모두 단군조선 강역이라는 말이다.
조선왕조에서 간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공안국의 전()을 인용하여 바로 해 뜨는 구역인 우이에 고조선 단군왕검의 궁궐이 있었기 때문에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국호인 조선(朝鮮)은 본래 우이(嵎夷)와 같이 해 뜨는 구역을 가리키는 지명이고, 희중(羲仲)은 단군 건국 이전에 아사달에서 동방을 다스리는 임금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정사인 사기(史記)에 이런 말이 있다.
 
[순임금이 섭정한 해] 2월에 순()은 동쪽을 순수하고 태산(泰山)에 이르러 시제(祡祭)를 지내고, 아울러 동국의 명산대천에 제사지내고 드디어 동방(東方)의 군장(君長, 단군)을 알현(謁見)하고 사시(四時)의 절기와 12, 정월 초하루를 통합하고, ()()()()을 통일하고 오례(五禮)를 편수하였다.

歲二月 東巡狩 至於岱宗祡 望秩於山川 遂見東方君長 合時月正日 同律度量衡 脩五禮
사기(史記)오제본기 
 
동이족인 순()은 천자의 업무를 섭정하는 지위에 오르자 먼저 동쪽 지방을 순행하여 동국산천에 제사지내고 마침내 동방의 군장(君長, 단군)을 알현하고 사시의 절기와 12, 정월 초하루와 날짜의 간지를 통합하고, 형을 통일하고 오례(五禮)를 제정했다고 하였다.
태산은 오악 중의 동악으로 청주의 서남단으로 지금 산동성에 있는 큰 산이다.
또한 유교경전인 예기왕제(王制) 편에 천하를 다스리는 모든 천자는 5년마다 제후를 순시하는데, 순시하는 해의 “2월에는 동쪽으로 순시하여 태산에 이르러서 시제를 지내고 동방 산천에 제사지내고 동방의 군장을 접견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중국의 정사인 사기의 기록을 통하여 고조선 단군의 존재가 확연히 드러난다.
요임금이 즉위하여 맨 처음 희중을 해 뜨는 우이에 보내 동방을 다스리며 살게 했던 내용은 단군조선의 도읍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고, 순임금이 동쪽으로 순수하여 동방의 군장을 알현하였다는 사실은 요순시대에 이미 동방에 국가가 건재했고 군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역사학계에서는 어리석게도 삼국유사가 단군조선에 관한 최초의 문헌이라고 주장하고,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국호를 동이 또는 조선이라고 하는데, 조선이라는 국호 하나로 통일해서 사용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이는 지금의 어느 곳을 말하는 것일까?
신라 효소왕(孝昭王) 때의 국사(國師) 혜통의 전기에 신라 도읍지를 해 뜨는 곳인 우이(嵎夷)라고 하였다.
 
고승 혜통(惠通)은 그 씨족을 자세히 알 수 없다. 세속인으로 있을 때 그의 집은 남산(南山)의 서쪽 기슭인 은천동(銀川洞) 동구에 있었다. …… 마침내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여 법명을 혜통으로 바꿨다. 당나라에 가서 선무외 삼장(善無畏三藏)을 찾아뵙고 배우기를 청하니 삼장이, “우이(嵎夷)의 사람이 어떻게 법기(法器)가 될 수 있겠는가!” 하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또 이차돈의 순교에 관한 글에 이런 말이 있다.
옛날 법흥대왕이 자극전(紫極殿)에서 팔짱 끼고 옷자락을 늘어뜨리며 부상(扶桑)의 구역을 굽어 살피며 좌우에 이르기를……

이상 삼국유사
 
여기에 자극전(紫極殿)은 신라 법흥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궁궐이고, 부상(扶桑)은 해 뜨는 양곡(暘谷)에 있다는 신령한 뽕나무를 말하는 것이니, 고조선과 신라는 같은 곳에 궁궐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삼국사기에서도 보인다.
 
진성여왕 11(897) 여름 6월에 왕이 태자 요()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이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표문으로 아뢰기를,“신 아무는 삼가 아룁니다.우이(嵎夷)살면서 희중(羲仲)의 관직에 있는 것이 신의 본분이 아니고, 연릉(延陵)의 절개를 지키는 것이 저의 좋은 방책인가 합니다.”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는 단군과 기자조선의 정통을 계승하여 해 뜨는 우이(嵎夷)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역대 신라왕은 요임금이 제정한 희중의 관직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나당연합군을 편성할 때에도 당 고종이 신라왕 김춘추를 우이도(嵎夷道) 행군총관으로 삼은 것이다.
이와 같이 상서에 나오는 우이(嵎夷)가 단군과 기자의 도읍지이며 그곳이 바로 신라도읍지라는 사실은 이미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지금부터 43백여 년 전인 중국의 요순(堯舜)시대에 간행되어 동양 최고(最古)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산해경(山海經)에는 고조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朝鮮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천독(天毒, 천축국)이다.
그 사람들은 삼신산(三神山)에 살며 남을 친근히 하고 사랑한다. [조선은 지금의 낙랑군(樂浪郡)이다. 천독(天毒)은 곧 천축국(天竺國)을 말한다. 도덕(道德)을 귀하게 여기고 문자서책동전화폐가 있었다. 부도(浮屠, 불교)는 이 나라에서 나온 것이다.]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 朝鮮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之 [朝鮮 今樂浪郡也. 天毒卽天竺國 貴道德 有文書金銀錢貨 浮屠出此國中也]
-산해경18 해내경.

조선은 열양(列陽)에 있는데, 동해의 북쪽 열고야산의 남쪽이다.
열양(列陽)은 연()에 속한다.조선은 지금의 낙랑군의 현()으로 기자(箕子)가 봉해진 곳이다. () 또한 강 이름으로 지금의 대방현(帶方縣)에 있으며 대방현과 열구현(列口縣)이 있다.
朝鮮在列陽 東海北山南 列陽屬燕朝鮮 今樂浪縣 箕子所封也. 列亦水名也 今在帶方 帶方在列口縣
-산해경12 海內北經. * 괄호 안은 곽박(郭璞)의 전().

또 중국 정사인한서지리지(地理志)에는 고조선 도읍지에 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낙랑군: 한 무제 원봉 3(B.C. 108)에 개설하였다. [응소는, 옛 조선의 도읍지라고 했다.]
25개 현이 있다. 조선현(朝鮮縣),[응소는, 무왕이 기자를 조선현에 봉했다고 하였다.]

樂浪郡: 武帝元封三年開 [應劭曰 故朝鮮國也] 縣二十五朝鮮[應劭曰 武王封箕子於朝鮮]

후한시대의 학자인 응소는 낙랑군이 옛 조선의 도읍지라고 하였는데, 이는 낙랑군의 치소인 조선현이 단군조선의 도읍지라는 뜻이고, 거듭하여 낙랑군 조선현(朝鮮縣)은 기자의 도읍지라고 하여 조선현이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도읍지를 별도로 구분하여 실제로는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산해경에 조선에 관한 곽박의 주석에, 해내경에는 조선의 도읍지가 낙랑군(樂浪郡)이라고 하였고, 해내북경에서는 낙랑군 조선현은 기자가 봉해진 도읍지라고 하였다.
이는 응소의 주석과 같은 내용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이래로 중국 황실에서 역대 신라왕을 낙랑군공 신라왕(樂浪郡公 新羅王)’으로 책봉하였다.
그러므로 상고사의 쟁점이 되고 있는 낙랑은 신라 도읍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이 본래 천축국이며 불교의 발상지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신라 도읍지에 불보살(佛菩薩)이 산다는 지상천국인 도리천(忉利天)이 있다는 설과 통한다.
신라의 대문호인 최치원 선생이 중국에 건너가 과거에 급제하고 문장으로 명성을 떨치고 28세에 귀국할 때에 같은 해에 급제한 중국인 친구 고운(顧雲)이 이런 시를 지어 주며 송별을 아쉬워하였다.

내 들으니 바다 위에 금오(金鼇) 셋이 있어
금오는 머리에 높고 높은 삼신산을 이고 있다네.
산 위에는 구슬궁전 진주대궐 황금전각이 있고 산 아래는 천리만리 넓은 물결이라네.
그 곁에 한 점 계림(鷄林)이 푸른데 오산(鼇山)의 빼어난 정기 기특한 인재 낳았도다.
12세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문장으로 중국을 감동시켰네.
18세에 과거에 나아가 한 화살 쏘아 과녁을 깨쳤다네.
삼국사기46권 열전

시를 보면 신라 도읍지는 신선세계인 삼신산에 있었으며 삼신산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금오산 곁에 계림이 있다는 사실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신라 진성여왕 11(897) 여름 6월에 왕이 태자 요(, 효공왕)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는데, 이때 당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양위표(讓位表)에서 '[해 뜨는 우이嵎夷] 살면서 희중(羲仲)의 벼슬에 있는 것이 신의 본분이 아니고 ⋯〔(日邊)居羲仲之官 非臣素分 ⋯〕'라고 한 것이다.

요임금은 갑진(甲辰, B.C 2357)년에 즉위하고 그 후 25년이 되던 무진(戊辰, B.C 2333)년에 단군이 우이(嵎夷)에 궁실을 세우고 고조선을 개국하여 1048년을 다스리다가 은나라 말기인 무정(武丁) 8년에 장당경(구월산)에 은거하다가 다시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이 되었다. 그러므로 단군은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건국한 이래로 도읍지를 옮긴 적이 없다.
주 무왕 때에 은나라의 왕족인 기자(箕子)가 다시 단군을 계승하여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개국하여 그의 후손이 대를 이어 928년을 다스리다가 41대 준왕(準王) 때에 이르러, ()나라 사람 위만(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위만조선은 왕험성(王險城)에 도읍을 정하고 88년을 다스리다가 한 무제가 정벌하여 그 땅에 한사군을 설치하였다.
후에 신라 역시 고조선을 계승하여 우이(嵎夷)에 도읍하고 천년을 누렸다.
그리하여 역대 신라왕은 요임금이 제정한 희중의 관직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그리고 신라는 똑같이 해가 처음 뜨는 신성구역인 우이(嵎夷)에 도읍을 정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유서 깊은 신라 도읍지는 지금의 어느 지역을 말하는 것일까?
신라 최치원 선생이 지은 봉암사 지증대사(智證大師) 비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계림(鷄林) 땅은 오산(鼇山)의 곁에 있는데/ 鷄林地在鼇山側
예로부터 유선 삼교에 기특한 인재가 많았다./ 仙儒自古多奇特
가련하게도 희중(羲仲)이 직분에 소홀하지 않아/ 可憐羲仲不曠職
다시 불일(佛日)을 맞아 공과 색을 분변하였다./ 更迎佛日辨空色

, 계림은 신라도읍지의 명승지로 신라 초기에 김알지를 얻은 곳이며 천연적으로 닭이 홰를 치고 있는 형상의 산이고, 오산(鼇山)은 금오산(金鼇山)이라고도 하는데, 삼신산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신화 속의 큰 자라 형상을 하고 있는 산이다. 이는 천연적인 산천의 형상을 응용하여 신라도읍지의 위치를 분명하게 밝히고, 아울러 계림과 오산은 이곳이 신라도읍지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고고학적인 물증이 된다.
는 최치원이 지은 난랑비 서문에, 한민족 고유의 종교인 풍류(風流)는 유··선 삼교(三敎)를 포함한다는 구절과 통하는 것으로, 이곳이 삼교의 발상지이고 이상향인 천하의 대 명당이기 때문에 뛰어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는 뜻이다. 단편적인 예로 신라 고승들의 비문과 전기에 보면, 고승 대부분이 고향이 계림(鷄林), 즉 신라도읍지이거나 이곳에서 출가하여 득도한 것으로 나타난다.
상서요전(堯典), ‘희중(羲仲)에게 나누어 명하여 우이(嵎夷)에 살게 하니 양곡(暘谷)이라고 한다.’ 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신라는 우이(嵎夷)에 도읍했기 때문에 역대 신라왕은 희중(羲仲)의 관직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신라 진성여왕 양위표(讓位表), ‘우이(嵎夷)에 살면서 희중(羲仲)의 관직에 있는 것이 신의 본분이 아니고, 연릉(延陵)의 절개를 지키는 것이 저의 좋은 방책인가 합니다.’ 라는 구절에서 이러한 사실이 확인된다.
또한 우이(嵎夷)는 단군과 기자의 도읍지이기도 하다.
는 불일(佛日)이란 인간의 정신세계를 밝혀주는 태양과도 같다는 뜻으로 지증대사를 불일에 비유한 것이다.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은 동방에서 성인이 출현하여 천하를 태평성대로 이끌었던 시대를 뜻한다.

비록 짤막한 문장이지만 절묘한 문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계림은 신라 도읍지에 있는 명승지이고, 오산은 삼신산(三神山) 인근에 큰 자라 형상을 하고 있는 금오산을 말하는 것이니, 신라 궁궐은 삼신산에 있었고 거기에 닭 형상의 계림과 자라 형상의 금오산을 찾으면 그곳이 바로 고조선 도읍지 아사달이며 신라 도읍지이기 때문이다.
오산의 현재 위치에 관해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산(鼇山)은 구례현(求禮縣)의 남쪽 15리에 있다. 산 정상에 바위 하나가 있고 바위에 빈틈이 있는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 전하기를, “고승 도선(道詵)이 일찍이 이 산에 살면서 천하의 지리(地理)를 그렸다.” 한다.

鼇山: 在縣南十五里 山頂有一岩 岩有空隙 深不可測 俗傳 僧道詵嘗住此山 畵天下地理 신증동국여지승람40권 구례현(求禮縣) 산천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은 봉래(蓬萊, 금강산) 방장(方丈, 지리산) 영주(瀛洲, 한라산)를 말하는 것으로, 현재의 평양이나 경주 지역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고, 삼신산의 하나인 지리산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리산의 서남단, 전남 구례군 일대에는 자라형상의 오산(鼇山)과 닭이 홰를 치는 형상의 계림(鷄林)이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단군조선의 건국에 관한 문헌은 삼국유사가 최초의 문헌이라고 하면서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순시대에 간행된산해경(山海經)에 이미 조선에 관한 기록이 있고, 또 삼국유사가 간행된 시기보다 천 여 년 이전에 생존했던 곽박의 주석에서는 단군조선의 건국과 도읍지의 위치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유교 경전인상서요전(堯典)에 나오는 우이(嵎夷)는 단군 기자 신라로 이어지는 세 왕조의 도읍지이고, 또 우공(禹貢)편에 나오는 九州 중에 청주(靑州)는 단군조선의 강역에 해당한다. 이리하여 상서우공(禹貢)편은 요순시대의 지리지(地理志)이기 때문에 사기오제본기와한서지리지에도 실려 있어 저명한 주석가들의 자세한 주석이 덧붙여져 있다.
산해경에 기록된 단군조선 건국과 도읍지의 위치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자.
 동해의 밖 대학(大壑, 삼신산)은 소호(少昊)의 도읍지이다.
소호가 전욱(顓頊)을 이곳에서 키우고 그때의 거문고와 비파(琵琶)를 남겨두었다.
감산(甘山)이라는 곳이 있어 감수(甘水)가 여기에서 나와 감연(甘淵)을 이룬다.
東海之外大壑 少昊之國 少昊孺帝顓頊于此 棄其琴瑟 有甘山者 甘水出焉 生甘淵.
산해경(山海經)14 대황동경(大荒東經)

감수(甘水) 근방에 희화국(羲和國)이 있다.
희화(羲和)라는 여자가 있어 이제 막 감연(甘淵)에서 해를 목욕시키려 하고 있다.
희화(羲和)는 대개 천지가 처음 생겼을 때에 일월을 주관하는 여신이다. 그러므로 계서(啓筮)공상(空桑)이 푸르고 팔방이 이미 열려 이에 희화가 있어 일월의 출입을 주관하는 일을 직무로 하여 이로써 밤과 낮이 되었다.’ 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저 위로 하늘을 보면 한 번 밝아지면 한 번 어두워지는데 희화가 있어 해와 달을 양곡(暘谷)으로부터 내는 것이다.
그래서 요()는 이로 말미암아 희(羲和)의 관직을 두고 사계절을 관장시켰다. 그 후세(後世, 단군)에 마침내 이곳에서 나라를 세우고 일월의 모형을 만들어 관장하며 감수(甘水)에서 목욕도 시키고 운행도 시키며 해가 양곡(暘谷)에서 떠서 우연(虞淵)으로 지는 것을 본떴으니 이른바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는 직책이 되었다.
희화(羲和)는 제준(帝俊)의 아내로 열 개의 해를 낳았다.열 아들을 낳았다는 말은 각각 해에 이름이 있어 열 개의 해를 낳았다고 하는 것이다.

甘水之間 有羲和國 有女子 名曰羲和 方日欲于甘淵羲和蓋天地始生 主日月者也 故啓筮曰 空桑之蒼蒼 八極之旣張 乃有夫羲和 是主日月 職出入爲晦明 又曰 瞻彼上天 一明一晦 有夫羲和之子 出于暘谷 故堯因此而羲和之官 以主四時 其後世遂爲此國 作日月之象而掌之 沐浴運轉之於甘水中 以效其出入 暘谷虞淵也 所謂世不失職耳羲和者帝俊之妻 生十日.言生十子 各以日名名之 言生十日
산해경15 대황남경(大荒南經)
 
* 괄호 안은 곽박의 주().
* (羲和)의 관직 : 상서(尙書)요전(堯典)에 나오는 요임금이 제정한 희중(羲仲) 희숙(羲叔) 화중(和仲) 화숙(和叔)의 관직을 말한다.
 
여기에 소호(少昊)는 황제 헌원의 아들이며, 전욱(顓頊)은 소호의 조카로 역시 삼황오제 중의 하나로 천하를 다스린 제왕이다. 그리고 감연(甘淵)은 해 뜨는 구역인 우이(嵎夷)에 있는 연못으로 일월의 출입을 주관하는 여신인 희화가 태양을 목욕시키는 곳이다.
삼황오제 중의 소호와 전욱의 도읍지가 해 뜨는 구역인 우이에 있었으며, 요임금이 희중을 보내 살게 했던 우이(嵎夷)에 있었으며 단군이 바로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개국하였다는 말이다.
따라서 대황남경 곽박의 주()'그 후세(後世, 단군)에 마침내 이곳에서 나라를 세우고 운운' 한 구절은 단군조선 건국과 도읍지에 관한 최초의 문헌이며, 소호 전욱 단군의 도읍지는 같은 곳이다.
 


역사왜곡의 시기와 배경
 일반적으로 역사 왜곡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일본에 혐의를 두지만 사실은 이조시대에 뿌리 채 날조 왜곡하였다.
신라 도읍지는 수미산 도리천(忉利天)이 있는 불보살이 사는 불국토이며 불교의 발상지이다. 이리하여산해경에서도 조선(朝鮮)은 천축국이라고 하였다.
그런 신성한 곳이기에 고조선도 이곳에 도읍하고 2천년을 누렸으니 신라 천년과 합치면 이미 3천년 도읍지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이씨조선의 건국 명분인 이른바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국교로 도입하는 숭유억불(崇儒抑佛)과 사대주의 정책과 정면 배치되고 있는 것이다.

고려 말기 명나라의 부당한 요구에 의해 이성계와 조민수 등이 요동정벌에 나섰다가 위화도에서 이성계의 주도로 말머리를 돌려 회군하여 오히려 고려군이 꺾이고 이로 인해 우왕은 왕위에서 물러나고 고려 조정의 마지막 보루인 최영 장군이 유배 길에 오르면서 이성계의 독무대가 되고 고려 조정은 서서히 멸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본래 여진족인 이성계는 허수아비 공양왕을 앞세워 우왕과 창왕을 시해하고 정적들을 차례로 제거하고 마지막으로 정몽주가 살해되자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마저 시해하고 마침내 조선을 건국한다.
이성계는 본래 고려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 이자춘의 몽고 이름은 오로사불화(吾魯思不花)이다.[조선왕조실록] 원래 여진족이 살던 땅의 호족이었는데 공민왕 때에 그가 살던 땅을 고려에 바치고 가족과 함께 고려에 귀화하였는데, 이때 이성계의 나이는 21세의 청년이었다. 훗날 고려 공민왕 10(1361) 2,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은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로서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에 임명되자 어사대(御史臺)에서 상소하기를,
이자춘(李子春)은 동북면(東北面, 여진족) 사람이고 또 그 지역의 천호(千戶)이니 그를 병마사로 임명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민왕은 윤허하지 않았다.[고려사]
이성계 일가는 출신이 고려사람이 아닌 본래 여진족이기 때문에 고려 조정에서 세력이 확장되는 것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고려 조정에서 우려했던대로 결과적으로는 호랑이를 끌어들여 키우다가 오히려 고려를 멸망시킨 결과를 초래하였다.

건국 직후 조선 조정에서는 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하여 국사인 삼국사기삼국유사를 서둘러 개간하기에 이른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삼국사기는 그 발문에 밝혀져 있듯이, 즉위 2(1393) 7월에 경주 부사에게 공문을 보내어 8월에 판각에 착수하여 이듬해(1394) 4월에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삼국유사는 조선 중종 7년 임신(壬申, 1512)년에 개간(改刊)했는데, 이때 이계복이 지은 발문의 첫머리에 보면 우리 동방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두 책이 다른 곳에서는 간행된 것이 없고 오직 경주부(慶州府)에서만 있었다.” 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형식으로 역사를 왜곡했던 것일까?
이태조 즉위 원년(1392) 8, 예조 전서(禮曹典書) 조박(趙璞) 등이 상서(上書)하였다.
"조선의 단군(檀君)은 동방(東方)에서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이고, 기자(箕子)는 처음으로 교화(敎化)를 일으킨 임금이오니, 평양부(平壤府)로 하여금 때에 따라 제사를 드리게 할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여기에서 이씨조선 역사왜곡의 기조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단군조선 기자조선 그리고 신라 천년의 도읍지는 똑같이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 지리산)에 있었다. 이곳은 본래 인류문명을 개척하였던 삼황오제인 복희 신농 헌원 소호 전욱의 도읍지이고, 후한서 동이전에서 밝히고 있듯이 인류문명의 발상지이며 지상낙원인 에덴동산이다.

바로 이 한국사의 중심에 있고 시대를 초월하여 나라의 신성구역인 신라 도읍지를 오히려 백제 구차례현(仇次禮縣, 구례)이었다고 날조하여 유물을 수거하여 경주 지역에 봉분을 만들어 왕릉인 것처럼 꾸미고, 또 고조선의 도읍지는 현재의 평양이라고 날조하였다.
또한 단군을 한민족의 국조로 규정하여 같은 선대 동방의 제왕인 삼황오제와 단절시켜 삼황오제는 중국의 조상으로 둔갑시켰다.
이렇게 하여 기존의 역사서를 개간한다는 명분하에 불리한 사료들은 거의 없애버리고 거기에 맞게 치밀하게 개작하고 나면 찬란했던 동방의 역사는 여지없이 초토화되고 백성들은 선악을 분간하지 못하여 그들의 건국 명분인 사대주의에 부합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보면 우민화정책의 전형이고 한민족말살정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범죄는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신라 도읍지에는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뚜렷한 증거물이 있다.
전북 진안군에 가면 말의 두 귀를 닮은 형상의 마이산(馬耳山)이 있듯이
신라 도읍지에는 여성의 생식기가 활짝 벌어진 형상의 여근곡(女根谷)
삼신산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자라 형상의 금오산(金鼇山)
닭이 홰를 치며 우는 형상의 계림(鷄林) 등이 지금 지리산의 서남단, 구례군 일대에 선명하게 모양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가 멸망한 지 한 세기가 지나도록 철저하게 현혹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 이상 삼황오제는 조선의 황제& 국내 학술지동양예학(東洋禮學)37, "삼황오제 국적과 한국 상고사의 체계" 중에서 - .조용호, 2017-01-21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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