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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료는 아사달과 관련한 자료 연구에 도움을 받고자 가져온 자료입니다. 심당전서 단서대강 조선기 제5세 가륵 - 제11세 아술단군 치적 중 아사달과 연관되는 자료입니다.


 

BC2168. 5. 가륵단군이 아우 嘉祿(가록)阿闍王(아도왕)으로 봉하고 국가를 주고 국가이름을 아사달(阿斯達)이라 하고 당장경(唐莊京)에 도읍하였다.

BC2167. 16. 阿闍王(아도왕)韓天寬(한천관)太宰(태재)로 하고 吳善(오선)都統(도통)으로 삼았다.

BC2166. 17. 阿斯達(아사달)遺族(유족)()의 추장이 黃州(황주)를 의지하여 반란을 일으키니 阿闍王(아도왕)吳善(오선)을 보내 토평하였다.

BC2163. 20. 아도왕이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BC2160. 23. 阿闍王(아도왕)은 서쪽으로 순행하여 바다를 바라보고 또한 永王山(영왕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五浦洞(오포동)에 비를 세웠는데 서쪽으로 순행한 事蹟(사적)을 기록하였다.

BC2136. 2. 봄에 사신을 夏國(하국)에 보내어 국교에 대하여 回謝(회사)하였다. 阿斯達(아사달) 나라의 阿闍王(아도왕)이 죽었으며 재위기간은 33년이다. 세자 摩耶(마야)가 즉위하니 이가 期平王(기평왕)원년 丙戌(병술)이다.

BC2116. 22. 期平王(기평왕)左海(좌해)로 순행하여 白陽道人(백양도인)을 만나 수레에 실어 같이 돌아왔다. 그 전에 정치와 종교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BC2115. 23. 期平王(기평왕)思皇峯(사황봉)에 올라 ()의 도읍을 바라보고 감정이 복받쳐 감탄하였다.

BC2105. 33. 阿斯達(아사달) 博士(박사) 魯可律(로가율)산과 땅의 맥을 따라서 땅을 파면 온천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평왕은 그 말을 따라 땅을 파서 온천이 용출함을 얻었다


BC2086) 14. 阿斯達(아사달)나라 期平王(기평왕)이 죽었는데 재위기간은 50년이었다. 세자 阿斯(아사)가 제위에 올랐는데 이가 武成王(무성왕)이다. *구을단군시기


BC2072. 12. 武成王(무성왕)檀聖廟(단성묘)秋山(추산) 아래에 세웠다. *달문단군

BC2071. 13. 武成王(무성왕)이 백성들에게 8가지의 법규를 가르쳤다. *달문단군

BC2070. 14. 武成王(무성왕)이 별궁을 韓里(한리)에 지었다. *달문단군

BC2063. 21. 阿斯達(아사달)에 큰 기근이 있어 倉粟(창속)을 발하여 구휼하였다.

BC2059. 25. 阿斯達國(아사달국)秋山(추산)아래에 담수에서 대합이 많이 나오므로 그것을 취하려고 다투었다.

BC2057. 27. 阿斯達國(아사달국)馬嘶嶺(마시령) 위에서 붉은 점이 있는 흰 말을 얻었다.*달문단군


BC2042. 6. 阿斯達國(아사달국) 武成王(무성왕)이 죽었다. 재위기간은 44년이다. 세자 朱開(주개)가 왕위에 오르니 이가 威靖王(위정왕)이다. *한율단군

BC2028. 20. 阿斯達國(아사달국)秋山(추산)에 측백나무는 무성하여 삼림을 이루므로 달리는 짐승과 나는 새들이 와서 깃들였다. 큰 새가 있는데 눈은 1 ()이고 다리는 4 ()이며 날개 사이의 간격은 3 ()이었다. 이 새를 잡아 길들여 순종하게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등 위에 타고 10여 리를 여행하였다. 그래서 이를 본따서 공중에 띄우는 배를 만들었다. *한율단군

BC1995) 53. 阿斯達國(아사달국)에서 땅을 파고 水利(수리)를 위하여 (둑을) 쌓고 농사철에 물을 대고 더위를 이길 수 있게 이용하였다. 또한 두레박[桔槹]水車(수차)楊水機(양수기)를 만들어 물을 대는데 편리하게 하였다. 또한 수차와 㫪米機(용미기)測候機(측후기)楊時機(양시기) 渾天儀(혼천의)排水器(배수기)吸水機(흡수기) 등을 백성들에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한율단군


 BC1993) 원년 阿斯達(아사달국)威靖王(위정왕)이 죽었다 재위기간은 49년이다. 세자 求乙(구을)이 즉위하니 이가 和定王(화정왕)이다원년은 己酉(기유)년이다..*우서한단군

 

己酉(기유, BC1992) 2.

이해에 크게 풍년이 들어 한 줄기에 8개의 이삭이 생겼다. ()는 태자가 되었을 때부터 雄畧(웅략)大度(대도)가 있었고 겸하여 德行(덕행)도 있었다. 臣民(신민)이 모두 欽仰(흠앙)하였고, 寶位(보위)에 올랐을 때에도 국정을 잘 다스렸으며, 인재를 잘 등용하였고 장병들을 훈련시켰으며, 천하의 뜻을 다 통합하였다. 阿斯達國(아사달국)長壽村家(장수촌가)에서 여자 아이를 낳았는데 사람의 몸에 사슴의 발을 하고 성품이 총명하였으니 이름을 鹿足夫人(록족부인)이라고 하였다. 후에 世子妃(세자비)가 되었다역사에서 기록하기를 황해도 長壽山(장수산)鹿足夫人(록족부인)의 행적이 있다고 하였다..

己酉二年. 是歲大豊. 有一莖八穗之禾. 帝自爲太子時有䧺畧大度, 兼有德行, 臣民皆欽仰, 及踐寶位, 善治國政登用良材, 敎練將兵, 有綂合天下之志. 阿斯達國長壽村家生女人身鹿足爲性聰明 名曰鹿足夫人, 後爲世子妃史曰, 黃海道長壽山有鹿足夫人跡.*우서한단군

 


 BC1985. 원년. ..阿斯達國(아사달국) 和定王(화정왕)이 서쪽 바다 長山串(장산곶)으로 순행하여 方士(방사) 招連(초련)의 말에 미혹되어 仙藥(선약)을 구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배 8척을 이끌고 바다에 배를 띄워 동쪽으로 옮겨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재위기간은 8년이며 제사가 끊기었다. 아사달국은 무릇 5세대 184년동안 지속되었다 *아술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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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당전서 단서대강 조선기 제5세 가륵 - 6세 오사구

참고) 한단고기단군세기 기록에는 3세 가륵단군입니다.

5세 단군왕검 가륵 인제

仁帝(인제) 휘는 嘉勒(가륵)이고 元帝(원제)의 태자이다. 元年(원년)己亥(기해)이고 재위기간은 45년이다.

仁帝諱嘉勒元帝太子也. 元年己亥在位四十五年.

 

己亥(기해, BC2182) 원년. ()의 성품은 총명하고 인자하며 성덕이 있었다. 큰아들 烏斯丘(오사구)太子(태자)로 삼았다. 5월에 ()三郞(삼랑)納言博士(납언박사)이다乙普勒(을보륵)을 불러 神王倧佺(신왕종전)의 도리에 대해서 물었다. 이하 번역 생략(환단고기 참조)

己亥元年. 帝性聰睿仁慈有聖德. 冊長子烏斯丘爲太子. 五月帝召三郞納言博士乙普勒, 問神王倧佺之道. 乙普勒交拇加右手, 行三六大禮, 而進言曰.., 神者能引出萬物, 各全其性, 神之所妙, 民皆歸依也. 王者能德義理世, 各安其命, 王之所宣, 民皆承服也. 倧者國之所選也, 佺者民之所擧也, 皆七日爲回, 就三神, 執盟, 三忽爲佺, 九桓爲倧. 盖其道也欲爲父者斯父矣欲爲君者斯君矣欲爲師者斯師矣欲爲子爲臣爲徒者亦斯子斯臣斯徒矣故神巿開天之道亦以神道而求爲福於世上人間而已代天神而王天下弘道益衆無一人失性代天王而主人間去病解怨無一物害命三七計日會全人執戒自是朝有倧訓野有佺戒玄妙自得光明共濟是爲居發桓也施之九桓九桓之民咸率歸一于化也

 

庚子(경 자, BC2181) 2. 때에 풍속은 오히려 같지 않고 사투리는 서로 각축을 벌였었다. 비록 眞書(진서)라는 상형문자가 있었으나 10집마다 많은 말들이 통하지 아니하였고 100리를 지나면 글자를 해독하기 어려웠다. 이 해 봄에 三郞(삼랑)博士(박사)이다.乙普勒(을보륵)에게 명하여 正音(정음) 38자를 만들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가림토(加臨土)인데 그 문자는 다음과 같다.

庚子二年. 時俗尙不一, 方言相殊, 雖有象形表意之眞書, 十室之邑語多不通, 百里之國字每難解. 是年春, 命三郞乙博士乙普勒, 譔正音三十八字, 是爲加臨土. 其文曰..,

 

辛丑(신축, BC2180) 3. 가을에 神誌(신지)太修官(태수관)이다高契(고 글)에게 명하여 배달나라의 옛 이야기[倍達留記]를 편수하게 하였고 칭하기를 刪修加臨多(산수가림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동양 사학의 원조가 되었는데 神誡(신계) 神訓(신훈) 勅語(칙어) 諭書(유서)에서부터 道德(도덕) 正治(정치) 法律(법률) 風俗(풍속) 習慣(습관) 등의 모든 것이 갖추어져 그 책에 들어있다野勃(야발)渤海文(발해문)으로 간행하였다..

辛丑三年. 秋命神誌太修官高契編修倍達留記, 稱曰刪修加臨多, 是爲東洋史學之元祖也. 神誡神訓勅語諭書及道德正治法律風俗習慣等皆備載此書野勃以渤海文刊行

 

癸卯(계묘, 2178) 5. 주와 군들을 按察(안찰)하고 학문과 농업을 권장하였다.

癸卯五年. 按察州郡奬學勸農.

 

甲辰(갑진, BC2177) 6. 太學(태학)에 있는 太士(태사)高辛(고신)혹은 高信(고신)이라고도 한다.가 부모의 상에는 3服制(복제)할 것을 청하니 ()가 좋다고 하였다. 愛苗(애묘)씨가 무도하여 ()가 병사를 보내 悉段(실단)에서 토벌하였다. 遼陽(료양)[1] 太守(태수) 索靖(색정)의 치적이 좋지 못하여 ()가 진노하였으며 弱水(약수)지금의 黑水(흑수)이다로 귀양보내 종신토록 갇혀 지내게 하였으나 후에 그를 용서하여 또한 그 땅을 봉국으로 삼았으니 흉노 선우의 조상이 되었다. 이르기를 摚犁孤塗單于(당리고도단우)라 하는데 즉 하늘摚犁(당리)의 아들孤塗(고도)大皇帝(대황제)單于(단우)라는 뜻이다.[2]

甲辰六年. 太學太士高辛一云高信請行父母喪三年服制帝曰善. 愛苗氏無道, 帝遣兵討伐于悉段. 遼陽太守索靖治績不善, 帝震怒命遷流于弱水今黑水, 終身棘置, 後赦之仍封其地, 因居而終爲匈奴單于之祖稱曰摚犁孤塗單于卽天摚犁孤塗大皇帝單于之義也.

 

乙巳(을사, 2176) 7년 봄(번역생략) 발해사에서는 ()聖德(성덕)訓意昭明(훈의소명)이 있다고 高興(고흥)이 남긴 遺史(유사)에 있다고 하였다..

乙巳七年. , 帝下詔曰, 天下之大本在於心之中正, 而巳[3]人失中正, 則事無成就, 物失中正, 則體乃傾覆人心愈危道心愈微惟精惟一允執厥中勿失中正不失中正然後萬事可得正矣. , 爲父當慈, 爲子當孝, 爲君當義, 爲臣當忠, 爲夫婦當以相敬, 爲兄弟當以友愛, 爲幼小當以悌長, 爲朋友當以有信恭儉以持己博愛以接人修學練業啓發智能鑄成德器廣施公益共開世務常尊國敎是遵禮法各守其職勤勉致産國如有事㤀私奉公冒險勇進克扶國家之大業是爾朕與汝臣民皆 拳拳服膺咸有一德實踐至意庶幾一體渤海史曰.., 帝有聖德訓意昭明載於高興遺史.

 

丙午(병오, BC2175) 8. 康居(강거)支伯特(지백특)西藏(서장)이다에 의지하여 반역하니, ()夫宇(부우)를 보내 그들을 토벌하고 평정하게 하였다. 4월에 ()太白山(태백산)에 올라 민가에서 불때서 나오는 연기가 적음을 보고 조세에 차등을 두라고 명령하였다.

丙午八年. 康居據支伯特西藏而叛, 帝遣宇平討平之. 四月帝登太白山, 望見民家炊煙少起, 命感租稅有差.

 

丁未(정미, 2174) 9. ()龍岡(룡강)에 올라 민가에서 불때서 나오는 연기가 많음을 보고 이내 기뻐하고 노인들에 상을 내렸다.

丁未九年. 帝登龍岡, 望見民家炊煙多起, 帝乃欣悅賞賜耆老.

 

戊申(무 신, 2173) 10. ()는 동쪽으로 巡行(순행)하여 滄海(창해)에 이르러 산과 강들을 보고 말하기를 아름답고 기이한 산과 강들의 佳麗(가려)함이여라고 말하고 나는 장차 도읍을 동쪽으로 옮기려고 한다고 하였다. ()의 마을이 반란을 일으키자 ()余守己(여수기)를 명하여 그 추장 素尸毛犁(소시모리)의 목을 베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그 땅을 素尸毛犁(소시모리)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牛首州(우수주)春州(춘주)이다. 그 자손은 해상으로 달아나서 天王(천왕)이라 참칭하였다.

戊申十年. 帝東巡至于滄海, 望見山川曰.., 美㢤奇㢤山河之佳麗㢤. 朕將欲遷都于東方. 濊邑叛, 帝命余守己斬其酋素尸毛犁, 自此稱其地曰素尸毛犁, 今牛首州春州. 其子孫逃于海上僭稱天王.

 

辛亥(신 해, BC2170) 13. ()는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이번 봄이 바야흐로 한창이고 곡식이 아직 여물지 않았을 때 草木(초목)과 많은 생물이 모두 그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는데 나는 백성들 중에 혹 鰥寡孤獨(환과고독)들이 곤궁한 상황에 항상 존재하니 우수와 비애 가운데에 있다. 그래서 근심으로부터 마음이 풀려서 환하게 웃는 날이 없으니 어찌 어여삐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로 하여금 夏國(하국)의 민간의 풍문을 조사하여 구원할 사실이 있는지 조사하게 하였다.[4] 속하기를 바라는 자가 심히 많았다.

辛亥十三年. 帝詔曰.., 今春和方畼之時, 草木群生之物皆有其自樂, 朕有百姓或鰥寡孤獨困窮之人常在憂愁悲哀之中無展眉歡笑之日可不憐㢤. 使人査實救之夏國之人聞風. 願屬者甚多.

 

계축(癸丑, 2168) 15. 아우 嘉祿(가록)阿闍王(아도왕)으로 봉하고 국가를 주고 국가이름을 아사달(阿斯達)이라 하고 당장경(唐莊京)白岳(백악)에 도읍하였다. 성을 쌓고 마을을 건설하니 인민들이 많이 모였으니 1,0000호가 되었다.

癸丑十五年. 封弟嘉祿爲阿闍王, 賜國, 號曰阿斯達, 都唐莊京白岳, 築城, 設邑. 人民多聚成都, 作一萬戶.

 

甲寅(갑인, BC2167) 16. 阿闍王(아도왕)韓天寬(한천관)太宰(태재)로 하고 吳善(오선)都統(도통)으로 삼았다.

甲寅十六年. 阿闍王 以韓天寬爲太宰, 吳善爲都統.

 

乙卯(을묘, BC2166) 17. 阿斯達(아사달)遺族(유족)()의 추장이 黃州(황주)를 의지하여 반란을 일으키니 阿闍王(아도왕)吳善(오선)을 보내 토평하였다.

乙卯十七年. 阿斯達遺族貊酋據黃州而叛, 阿闍王遣吳善討平.

 

戊午(무오, BC2163) 20. 아도왕이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戊午二十年. 阿闍王築壇祭天

 

辛酉(신유, BC2160) 23. 阿闍王(아도왕)은 서쪽으로 순행하여 바다를 바라보고 또한 永王山(영왕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五浦洞(오포동)에 비를 세웠는데 서쪽으로 순행한 事蹟(사적)을 기록하였다.

辛酉二十三年. 阿闍王西巡觀海, 仍登永王山, 祭天, 立碑于五浦洞, 記西巡事蹟.

 

壬戌(임술, BC2159) 24. 모든 ()들에게 정치를 살피고 인정을 베풀며 구휼을 권유하고 농상을 장려하게 하였다.

壬戌二十四年. 命諸汗, 察政, 施仁, 勸諭救恤, 奬勵農桑.

 

乙亥(을해, BC2146) 37. 夏國(하국)主相(주상) 畎部(견부)를 침범하여 ()가 병사를 보내 저지하였다. 阿闍王(아도왕)이 입조하여 형제우애의 도리에 대하여 敍事(서사)하였다.

乙亥三十七年. 夏主相來侵畎部, 帝遣兵禦之. 阿闍王入朝叙兄弟友愛之誼.

 

丙子(병자, BC2145) 38. 夏國(하국)의 주상이 風部(풍부)黃部(황부)를 침범하니 ()가 병사를 보내 그들을 막았다.

丙子三十八年. 夏主相來風部黃部, 帝遣兵禦之.

 

辛巳(신사, BC2140) 43. 于部(우부)夏國(하국)과 서로 통하여 화합하였다.

辛巳四十三年. 于部與夏國通和.

 

壬午(임 오, BC2139) 44. 때에 천하는 태평하고 백성은 안락하여 비는 순하고 오고 바람은 고르게 들었다. 하늘에서는 홍수와 가뭄의 재앙이 없었고 곡식은 풍년이 들고 과일은 잘 익어 백성들이 먹고 입는 것에 대한 근심이 없었으므로 이를 일컬어 治平時代(치평시대)라 하였다.

壬午四十四年. 時天下泰平, 百姓安樂, 雨順風調 天無水旱之灾, 穀豊, 果熟, 民無衣食之患,稱之以治平時代.

 

癸未(계미, BC2138) 45. 9월에 ()가 죽었다. 태자 烏斯丘(오사구)가 즉위하니 이가 光帝(광제)이다.

癸未四十五年. 九月帝崩, 太子烏斯丘立, 是爲光帝.

 

[1] 환단고기에는 列陽이라고 하였다.

[2] 약수를 黑水(흑수)라고 하였는데 오늘날 흑룡강은 아닐 것이다. , 약수는 흉노의 땅에 있어야만 한다.

[3] 원문은 이나 문맥상 인듯하다.

[4] 왜 이런 기록이 나왔는가?

 

규원사화가륵임금 기록

하국(夏國) 왕이 덕을 잃어 그 신하 가운데 왕위를 넘보고 반역하는 자가 있으므로, 이내 식달(息達)로 하여금 람국(藍國)과 진번(眞蕃)의 백성들을 이끌고 가서 그를 정벌케 하니 나라의 위세가 더욱 빛났다.중략재위 51년 동안 위엄 있는 덕은 사방으로 퍼져서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가 그 교화를 사모하게 되었다. 夏王失德, 其臣有簒逆者, 乃使息達率藍眞蕃之民, 以征之, ……在位五十一歲, 威德流被于四表, 國人咸慕其化.

 

후한서 동이열전:

하후씨 태강이 덕을 잃자 이인(夷人)들이 처음으로 배반하였다.[태강은 계()의 아들이다. 사냥터에 머무르면 백일이 지나도록 돌아가지 않았으며 백성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다가 예(羿)에 의해 쫓겨났다.] 夏后氏.太康失德, 夷人始畔.[太康, 啓之子也. 槃于游田, 十旬不反, 不恤人事, 爲羿所逐也.]

 

태강은 하국의 제3대 왕으로 예에 의해 쫓겨난 그 19년은 BC2170년이며 곧 가륵 37년이며 약간의 년대 차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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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년은 갑신년(BC2137)이다. 큰아들 구을을 책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임금의 아우 오사달을 책봉하여 蒙古里(몽고리)()왕이다으로 삼았다. 그 후손은 크게 번성하여 내외 몽골족이 되었는데 즉 元帝國(원제국)의 황제의 조상이다. 가을에 夏國(하국)主相(주상)이 사신을 보내 입조하여 좋은 이웃나라가 되기를 청하였다. 10월에 ()는 북쪽으로 순행하여 太白山(태백산)에서 三神(삼신)에 제사를 지내고 不老草(불로초)를 얻었는데 이것을 인삼이라고 하며 또한 仙藥(선약)이라고도 한다. 이때부터 신선은 죽지 않는 다는 설과 인삼을 채집하는 일들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지만 괴이하다.

 

第六世檀帝(6세 단제)

光帝諱烏斯丘仁帝太子也 元年甲申在位三十八年

光帝(광제)의 이름은 烏斯丘(오사구)이고 仁帝(인제)太子(태자)이다. 원년은 갑신년이고 재위기간은 38년이다.

 

甲申元年

. 冊長子丘乙爲太子. 封皇弟烏斯達爲蒙古里汗王也. 其後孫繁衍爲內外蒙古族, 卽元皇之祖也. 秋 夏主相遣使入朝, 請結好隣國之交. 十月, 帝北巡, 祭三神于太白山, 得不老草, 是謂人蔘, 又稱仙藥. 自是, 神仙不死之說與人蔘採摘之事密有關聯頗多恠異也.

甲申(갑신, BC2137) 원년. 큰아들 丘乙(구을)을 책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의 아우 烏斯達(오사달)을 책봉하여 蒙古里(몽고리)()왕이다으로 삼았다. 그 후손은 크게 번성하여 내외 몽골족이 되었는데 즉 元帝國(원제국)의 황제의 조상이다. 가을에 夏國(하국)主相(주상)이 사신을 보내 입조하여 좋은 이웃나라가 되기를 청하였다. 10월에 ()는 북쪽으로 순행하여 太白山(태백산)에서 三神(삼신)에 제사를 지내고 不老草(불로초)를 얻었는데 이것을 인삼이라고 하며 또한 仙藥(선약)이라고도 한다. 이때부터 신선은 죽지 않는 다는 설과 인삼을 채집하는 일들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지만 괴이하다.

 

乙酉二年

. 春遣使于夏國回謝國交. 阿斯達國阿闍王薨在位三十三年, 世子摩耶立是爲期平王元年丙戌.

乙酉(을유, BC2136) 2. 봄에 사신을 夏國(하국)에 보내어 국교에 대하여 回謝(회사)하였다. 阿斯達(아사달) 나라의 阿闍王(아도왕)이 죽었으며 재위기간은 33년이다. 세자 摩耶(마야)가 즉위하니 이가 期平王(기평왕)원년 丙戌(병술)이다.

 

戊子五年

. 鑄圓孔貝錢. 八月夏人來獻方物. 十月朝野之事命書之于石, 公諸民間.

戊子(무자, BC2133) 5. 圓孔貝錢(원공패전)을 주조하였다. 8월에 夏國(하국) 사람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 10월에 朝野(조야)에 관한 일을 돌에 글로 새겨넣도록 명령하고 민간에 널리 알렸다.

 

庚寅七月

. 設造船工場于薩水在遼東今州南河也之上.

庚寅(경인, BC2131) 7. 조선공장을 薩水(살수)遼東(료동)의 지금 () 남쪽 강에 있다에 건설하였다.

 

癸巳十年

. 春建乾淸宮二十五年而完成. 東西六百間, 南北百間, 上層可坐萬人, 下層可立四丈高竿.

癸巳(계사, BC2128) 10. 봄에 乾淸宮(건청궁)25년만에 완성하였다. 동서로 600간이고 남북으로 100간이며 윗층은 좌석이 1,0000이며 아래층은 높이가 4길인 솟대가 있다.

 

庚子十七年

. 畎部黃部來朝 設宴優待.

庚子(경자, BC2121) 17. 畎部(견부)黃部(황부)來朝(래조)하였다. 잔치를 베풀고 후하게 대우하였다.

 

壬寅十九年

. 帝命築平壤城扶餘. 城外種柳四圍, 使民心柔順. 夏主相失德, 其臣羿弑之, 奪其位. 帝命息達率藍眞弁三部之兵, 以征之國威益彰. 天下聞之畏服.

壬寅(임인, BC2119) 19. ()平壤城(평양성)扶餘(부여)을 쌓도록 하고 성 밖의 둘레에는 버드나무를 심게하여 민심을 유순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夏國(하국)主相(주상)이 덕을 잃어 그 신하 羿()가 그를 죽여 주상의 위치를 찬탈하였다. ()息達(식달)에게 ()()() 3부의 병사를 이끌고 그들을 정벌하여 국위를 더 밝게 빛나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천하가 이를 듣고 두려워 복종하였다.

 

癸卯二十年

. 蘇奈伐上奏曰.., 治天下之務 正風俗親賢才爲本 當國財强兵士爲要 故並用文武爲長久之策也 國雖大 好戰必亡 㤀戰必危 故古之聖帝明王平天下之道在於恩威並行. 是以戮好而安民則殺之亦可, 伐罪而安國則伐之惟義. 俱文治而施恩則譬如蒼蝇之臭集 而竟致腐敗, 武治而行威則譬如飛霜之垂掩而終無活力 治政之方在於其機能之如何耳. 基下曾不見春生秋殺時序之運又不察日陽月陰消長之化乎. 伏願基下 革新政令 肅淸軍紀 督督勵民志 君臣合體 繼承祖業以成萬代 不萎之神聖國家焉. 帝嘉納 以蘇奈伐爲上將 方民伯爲太宰.

癸卯(계 묘, BC2118) 20. 蘇奈伐(소나벌)이 임금께 아뢰어 이렇게 말하였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풍속을 바르게 하고 어진 인재를 가까이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나라의 재산을 돌보고 ()()를 강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를 병용하는 것이 나라를 오래 유지하는 책략입니다. 나라가 비록 크다 할지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며 망령되이 전쟁을 하면 반드시 위태로우니 그러므로 옛날의 聖帝(성제)明王(명왕)들의 천하를 평정하는 도리는 은혜와 위엄을 병행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죽여 백성이 편안하면 살인도 역시 가능하며 다른 나라의 죄를 벌하여 나라가 편안하면 벌하는 것도 의로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단지 文治(문치)만으로 은혜를 베풀면 이는 파리가 냄새나는 곳에 모여서 마침내 부패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며, 武治(무치)로 위엄만 드러내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드리워 마침내 활력이 없어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니 정치하는 방법은 그 ()를 능히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基下(기하)께서 일찍이 春生秋殺(춘생추살)時序(시서)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또한 기하께서 日陽月陰(일양월음)消長(소장)의 변화를 살피지 못하셨습니까? 기하께 엎드려 원하오니 정치를 혁신하시고 군기를 새롭게 바로잡으시며 백성의 뜻을 督勵(독려)하고 君臣(군신)간에 하나됨을 이루서 조상들의 업을 계승하시고 만대에 이루어 不神聖國家(신성국가)가 시들지 않게 하옵소서.” ()嘉納(가납)하고 蘇奈伐(소나벌)上將(상장)으로 삼았고 方民伯(방민백)太宰(태재)로 삼았다.

 

乙巳二十二年

. 期平王巡左海, 遇白陽道人, 載車同歸先問政敎

乙巳(을사, BC2116) 22. 期平王(기평왕)[1]左海(좌해)로 순행하여 白陽道人(백양도인)을 만나 수레에 실어 같이 돌아왔다. 그 전에 정치와 종교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丙午二十三年

. 期平王登思皇峯望帝都而不勝感歎.

丙午(병오, BC2115) 23. 期平王(기평왕)思皇峯(사황봉)에 올라 ()의 도읍을 바라보고 감정이 복받쳐 감탄하였다.

 

辛亥二十八年

. 驟雨之際, 龍淵有瑞光照耀, 稱之謂龍化.

辛亥(신해, BC2110) 28. 소나기가 내릴 때에 龍淵(룡연)에 상서로운 빛이 비추고 빛나니 그것을 일컬어 龍化(룡화)라 하였다.

 

癸丑三十年

. 命農官方進敎民以稼道

癸丑(계축, BC2108) 30. 農官(농관)에게 명하여 나라 여러 곳으로 나아가 백성들에게 벼심는 방법을 알려주도록 하였다.

 

丙辰三十三年

. 阿斯達博士 魯可律 曰, 山地從脉掘得溫泉. 期平王從其言, 而掘地, 果溫泉湧出.

丙辰(병진, BC2105) 33. 阿斯達(아사달) 博士(박사) 魯可律(로가율)산과 땅의 맥을 따라서 땅을 파면 온천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평왕은 그 말을 따라 땅을 파서 온천이 용출함을 얻었다.

 

辛酉三十八年

. 帝西巡發病而還. 六月崩. 太子羊加丘乙立, 是爲平帝.

辛酉(신유, BC2100) 38. ()가 서쪽으로 순행하여 병을 얻었으므로 돌아왔다. 6월에 죽었는데 羊加(양가)인 태자 丘乙(구을)이 제위에 올랐는데 이가 平帝(평제)이다.

 

[1] 阿斯達(아사달) 나라의 제2세 왕이다. 아버지는 가륵 단제의 동생인 가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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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 단군왕검 아술숙제

숙제는 이름이 아술이고 莊帝(장제)의 태자이다. 원년은 병진년이고 재위기간은 35년이다.

肅帝諱阿述莊帝太子也. 元年丙辰在位三十五年.

 

丙辰(병 진, BC1985) 원년. 큰아들 魯乙(로을)을 태자로 삼았다. 봄에 두 개의 해가 떠올랐다. ()는 인덕이 있어 백성이 금한 것을 범하면 반드시 이렇게 말하였다. “똥 묻은 땅이 비록 더러워도 비와 이슬이 내리는 때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더 이상 논쟁하지 않으셨다. 백성들이 스스로 감화되어 교화되고 복종하니 淳厖(순방)의 변화가 크게 이루어졌다. 阿斯達國(아사달국) 和定王(화정왕)이 서쪽 바다 長山串(장산곶)으로 순행하여 方士(방사) 招連(초련)의 말에 미혹되어 仙藥(선약)을 구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배 8척을 이끌고 바다에 배를 띄워 동쪽으로 옮겨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재위기간은 8년이며 제사가 끊기었다. 아사달국은 무릇 5세대 184년동안 지속되었다[1]()에서 말하기를 和定王(화정왕)이 선약을 구하러 동쪽을 향하여 바다에 배를 띄운 후 그 종적이 묘연하며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바가 없으니 그 후손은 陽國(양국)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丙辰元年. 冊長子魯乙爲太子. 春有兩日並出. 帝有仁德, 民有犯禁者必曰糞地雖汚雨露有時降置而不論. 民自感化而敎服淳厖之化大行. 阿斯達國和定王幸西海長山串惑於方士招連之言欲求仙藥而率八隻船 浮海東遷不返. 在位八年 祀絶阿斯達國凡五世一百八十四年史曰, 和定王求仙藥浮海東向踪踪跡渺然無聞不返而 其後孫爲陽國之始祖云.

 

丁巳(정사, BC1984) 2. 여름 靑海(청해)를 지키던 干促(간촉)이 반란하여 병사를 일으켜 帝城(제성)을 침범하고 궁궐을 포위하니 ()常春(상춘)지금의 長春(장춘)으로 피하였다. 새로이 궁궐을 九月山(구월산) 남쪽 기슭에 짓고 上將(상장) 支于粟(지우속) 등을 보내 干促(간촉)을 토벌하고 목을 베었다.[2]

丁巳二年. 夏靑海守干促叛擧兵犯帝城圍宮闕, 帝避于常春今長春也創新宮于九月山南麓. 遣上將支于栗等討誅干促.

 

戊午(무오, BC1983) 3. 7월에 ()는 도읍으로 돌아왔다.[3] ()朔方(삭방)으로 순행하여 그 實政(실정)을 살피었다.

戊午三年. 七月帝還都. 帝幸朔方察其實政.

 

庚申(경신, BC1981) 5. 高蘇(고소)에게 명하여 國法全書(국법전서)를 고치어 편찬하도록 하였다.

庚申五年. 命高蘇改撰國法全書.

 

辛酉六年. 春乙成文德奏曰.., 國家是萬民之國家非一人之私有也. 是故君臣合意議定國事也. 每歲 定期日使府郡民代表者共會于議事院議決政務然後得天帝之允諾令政府諸司施行則是爲君臣合意之政治也. 伏願基下定會議之期使國民許其參政權焉. 帝許之制議政法以每歲八月一日定議會日使國民俊秀者會于議事院議定國事共參政權自是爲民權發作之始.[4]

 

辛未(신미, BC1970) 16. ()는 친히 주와 현을 순행하여 백성의 실상을 按察(안찰)하고 홀로된 자를 구휼하고 궁핍한 자를 구제하였다.

辛未十六年. 帝親幸州縣按察民情恤孤救窮.

 

庚寅(경인, BC1951) 35. ()가 죽고 태자 魯乙(로을)이 제위에 올랐는데 이가 靈帝(령제)이다.

庚寅三十五年. 帝崩太子魯乙立, 是爲靈帝.

 

[1] 아사달국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지만 가륵의 아우 가록이 초대왕으로 있었으니 단군조선과 친인척간이다. 그런데 앞서 아술 단군왕검은 우서한 단군왕검의 아들이 아니고 왕권을 침탈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였다. 이제 그 친인척 나라인 아사달국의 왕인 화정왕이 그 본국이 단군조선의 정권이 바뀌자 배 8척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간 것이다.

[2] 이 역시도 아술 단군왕검이 우서한 단군왕검을 배반하고 왕권을 침탈하였기에 청해를 지키는 간촉이라는 자가 이 일을 바로잡고자 하여 아술 단군왕검을 침범하여 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3] 환단고기에는 상춘으로 피한지 3년 뒤에 돌아왔다고 하였는데 이곳에서는 그냥 肅帝(숙제) 3년에 돌아왔다고 기록하였다.

[4] 참정권 관련 기록이라서 번역은 생략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아술 단군왕검이 왕권을 찬탈하고 그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폭정을 일삼았으므로 신하들이 이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였을 것인데 이제 이러한 제도가 과장되게 단기고사에는 참정권이고 표현된 것이다.

출처:https://history-backup.tistory.com/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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