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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공부를 하다보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어떤 급격한 변동, 이주와 관련된 자료를 보게 됩니다. 급격한 변동, 이주의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세계 기후의 변화이고 관련된 환경의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자료는 유라시아 대륙의 지리적 특징과 기후에 관련된 것입니다. 읽어보시고 연구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지리적 특징과 기후

1. 몽고의 지형적 특징

: 몽고 알타이의 末端지역과 그 인접지역에 척추동물의 가장 광대한 집적지가 있다.

2~1억년 전에 내륙아시아의 고비 지방에 담수의 내륙호가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15천만 년 전 남쪽에 히말라야 산맥이 융기하여 인도양으로부터 습기가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차단하였다. 그리고 지금의 몽고 지형도 높아지게 되었다. 이것은 건조화, 즉 내륙호가 감소현상을 보이게 된 발단이 되었으며 몽고 지역의 융기와 기후의 한랭화에 의하여 차츰차츰 건조화가 진행되었다. 거대한 호수가 없어지고 열대풍의 삼림은 서서히 사라져 버렸는데, 오늘날에도 당시의 화석 가운데에서 수목을 발견할 수가 있다.

2. 인류는 아시아내륙에서 기원

55백만 년 전 현대의 사바나와 스텝의 원형이 발달하게 시작했다.

고비사막에서 5년간 아메리카 조사단의 활동을 총괄하여 서술한 <몽고지질학>을 보면 아시아 대륙의 중심에는 다른 대륙에 인류가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인간이 살았다는 가설을 발표하고 있다. 19세기~20세기에 많은 연구자들은 인류탄생의 메커니즘에 가장 적합한 모델은 내륙아시아, 특히 몽고라고 생각하였다. 몽고에서는 열대적인 수림에서부터 광활한 공간인 사바나와 스텝으로의 이동이 천천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메튜의 견해에 의하면 험준한 고비지방에서는 생물이 생존하기 위하여 전투가 가장 격렬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모든 생물은 추위, 식량획득의 곤란, 기온의 급격한 변화와 수목이 전혀 없는 드넓은 공간 같은 어려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초기의 유인원은 사라져가는 열대수림과 함께 멸망하였든가 혹은 지상생활로 옮겨갔을 것이다. 지상의 유인원은 그 당시에 이미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무리를 만들었으며, 무기로 막대와 돌 따위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들은 직립보행을 하였고 뇌의 변혁도 일어났는데, 이것이 바로 원숭이를 인간으로 진화시킨 요인이었다. 이러한 견해는 러시아와 소련의 학자들에 의해서도 받아들여져, 스슈킨과 데베츠는 인류 발생의 중심이 내륙아시아라고 생각하였다. 스슈킨에 의하면 인류의 조상이 형성되었던 지역은 아마 造山과정에서 일어나는 기복이 매우 급격히 변화되는 큰 산맥의 산록일 것이라고 한다. 내륙 아시아가 최초의 인류가 출현한 지역이고 그곳으로부터 점차 유럽, 아시아 북부, 북아메리카 지역으로 이민보내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스슈킨 1928) 1927면 내몽고 남쪽 경계에 있는 주구점에서 40~50만년 전 인류의 조상의 뼈와 석기가 발견되었는데 그 뼈의 주인이 시넌드로프스라고 명명되었다. 동굴 속에서는 몇 천 년이 지난 모닥불의 재가 남아있는 퇴적층과 많은 동물의 뼈가 발견되었다. 시넌드로프스는 수렵인이었고, 주로 커다란 짐승을 목표로 혀였다는 것과 불을 사용할 줄 알았고, 특히 불을 피우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는 사실 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922~23년에 내몽고의 하투지방에서 약 20만 년 전에 살았던 이른바 하투인의 뼈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륙아시아에 있어서 원인의 탐구는 지금까지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침식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조상의 흔적이 남아있었던 지층이 파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수렵민의 석기 및 그들의 주거지는 몽고의 스텝지역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3. 중앙아시아 기후변화

 

대륙의 심장부 중앙아시아 지역은 빙하기를 지나면서 북극고기압이 수축되어 비를 내리던 온대성 저기압이 북방으로 이동함에 따라 이상 건조현상으로 사막화가 진행된다. 그 결과 다뉴브강에서 만주의 눈강에 이르는 초원지대가 형성된다. 1만년 전 기온이 상승하자 사냥, 열매채취가 용이해지고 인류가 번성하여 인구가 늘자 중앙아시아의 목초지대에서 가축의 사료인 물과 풀을 따라 1년에 천리 이상을 옮겨가며 살았다. 이 유목이동로는 서쪽으로는 다뉴브 평야지대, 남쪽으로는 알타이 서남부 천산산로를 따라 카스피해, 이란고원 북부에서 터키에 이르고 동으로는 북몽고 고비사막 동부에서 만리장성, 북부티벳고원에 이른다. 기원 전 1500년 무렵부터 대륙성 기후가 강화됨에 따라 유목민은 동서남북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파지리크나 아르잔 등의 고분유적에서도 확인되듯이 각 지역의 집단 간에 생존을 위한 격전의 역사가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동방에 속한 집단과 서방에 속한 집단은 문화적이나 사상적으로 서로 구별되는 특징을 지닌 역사-문화 공동체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9세기경, 초원지대의 기후가 갑자기 춥고 건조해졌는데, 몽골고원의 목초지가 제일 먼저 이러한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았다. 기원전 8세기경, 가뭄이 초원지역 유목민들을 중국대륙으로 내몰았다. 그들은 한족에게 격퇴되었고, 연쇄반응적인 민족이동이 일어나, 일부 기마(騎馬)유목민들은 당시 켈트족 세상이었던 유럽의 동부 변경인 다뉴브강 유역에까지 몰려가게 되었다.”

 

4. 유라시아 초원의 지리적 특징

지리

아시아 고원지대는 서로 다른 시기에 생긴 천산-알타이 습곡과 히말라야 고산습곡이 충돌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서북부에는 활처럼 휜 천산과 알타이산맥이 있고 남쪽에는 반대방향으로 휜 히말라야산맥이 있어 투르키스탄과 몽골리아를 둘러싸고 있다. 이 두 지역은 고원의 오지로서 여름에는 찌는 듯한 더위와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를 보이는 아주 극단적인 대륙성기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유라시아 내륙은 가로로 길게 띠를 이룬 8,000 km의 초원으로 덮여 있다. 헝가리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우크라이나와 남부 러시아를 지나 중앙 아시아와 만주까지 뻗어 있는 이 띠 모양의 넓은 초원에는 트란속시아나의 키질쿰과 아무다리아 강 남쪽의 카라쿰 사막, 타림분지로 둘러싸인 타클라마칸 사막, 그리고 타클라마칸 사막과의 접점인 롭노르에서 만주의 경계를 이루는 대흥안령 산맥까지 서남쪽에서 동북쪽을 향해 펼쳐져 있는 고비사막이 있다.

 

이들 사막에는 복잡한 산맥들이 있고 고도가 높을수록 강우량은 증가하여 산봉우리에는 만년설로 덮여 여기에서 내려오는 시냇물은 저지대의 마른땅으로 흘러 관개농업이 가능하였다. , 산들의 주위는 푸른 숲의 섬이 되는 오아시스가 있었으며 이곳 오아시스 주민들은 유목민을 보완하는 기술과 물건으로 초원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중국 등의 정착지역은 연해 바다의 습기로 생긴 커다란 오아시스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유라시아 초원지대는 알타이 산맥에서 대흥안령 산맥까지 약 2,400 km, 남북으로 600-800 km에 걸쳐 펼쳐진 동부초원과, 다뉴브강 입구에서 시작하여 흑해 북안을 따라 볼가강 하류를 지나 알타이 산맥까지 약 4,000km, 그 폭은 320-950km 정도인 서부초원으로 나뉘어진다. 서부초원은 우랄산맥의 남쪽에 있는 우랄 강의 양안에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가끔 강과 시내 물이 초원을 남북으로 가른다. 이 강줄기들은 북쪽이나 남쪽으로 천천히 흘러, 여름에는 조그만 배로 그리고 겨울에는 썰매로 강을 따라 짐을 쉽게 운반할 수 있었으므로 교역이 쉬웠다. 계절적으로 대서양에서 비를 함유한 바람이 서유럽에 비를 뿌리다 돈강에서부터 산발적으로 되면서 강수량이 감소하므로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주위에는 자연 목초지가 잘 형성되었으나 동쪽으로 갈수록 목초지의 조건이 나빠 유목민들은 서쪽으로 이동하려 하였다.

 

동부초원은 몽골고원과 그 주변지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기후는 고도가 높아서 매우 춥고, 년간 강우량이 250-500 mm로 적어 풀이 계절적으로 듬성듬성 자란다. 따라서 동부초원은 서부초원보다 사람이 살기에 더욱 혹독한 땅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동부초원의 유목민들은 역사적으로 만주와 북 중국으로 남진과 동진, 그리고 서부초원의 좋은 초지를 찾아 일리강의 계곡과 발하쉬 호반을 따라, 천산-알타이산맥 사이의 통로를 지나 서진하였다. 이러한 이주와 정복은 중국과 중동 그리고 인도와 유럽의 정착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유목민들은 유라시아 초원의 독특한 지형과 식생으로 초원문화라는 공통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아 AD 1000년까지 초원제국의 흥망에 관한 정보는 매우 불확실하다.

 

유라시아초원의 동, 서 양끝은 만주와 헝가리로 연결된다. 이들 지역은 유목과 농업의 혼합경제가 형성되었다. 유라시아 초원의 서남쪽 변두리인 중동지역은 초지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 서남방 초지에는 또 다른 유목형태가 일어나 홍해를 건너 아프리카 깊숙이까지 뻗어있었다. 유목 기마민에게 카프카즈를 넘는 것은 쉬웠으므로 북쪽의 유라시아 초원에서 서남방 초지로의 이동이 반복되어, 두개의 다른 유목전통 즉, 북쪽의 인도-유럽계와 투르크-몽골계가 서남방의 셈족과 섞이게 되었다.

 

유라시아초원의 북쪽은 삼림지대로 연결되며 긴 겨울과 짧고 서늘한 여름으로 침엽수가 자라고 있다. 이러한 타이가 지역은 사람이 사는 북방한계선으로 초원지대보다 더욱 살기 힘들다. 특히, 몽골고원의 북으로는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시베리아의 대 산림인 타이가와 바이칼 호수가 있으며 그 넘어 북쪽 끝은 춥고 건조한 불모산지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곳 아시아의 타이가에 사는 수렵민과 채집민들은 일찍부터 초원지대로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추위와 더위 그리고 계절의 혹독함에 단련된 이들은 몽골고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몽골고원의 남으로는 메마른 고비사막, 그리고 이 모래사막 넘어에는 내 몽골 초원과 북 중국이라는 정착문명이 있었다. 이 고원의 동쪽 끝에는 대흥안령 초지가 펼쳐져 있으며 서쪽 끝에는 천산-알타이산맥이 가로놓여 있다. 중앙은 오르콘 강 유역의 계곡을 따라 오아시스도 있으나 대부분은 나무가 자랄 수 없고 농경에도 적합하지 않은, 그러나 양이나 소의 방목에는 이상적인 초원이 펼쳐져 있다. , 이 몽골고원의 절반은 광활한 대 초원지대이지만, 그 나머지는 원시림과 호수 그리고 반 사막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5. 유목의 초기역사

 

유라시아 초원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25,000년에서 35,000년 이전의 후기 홍적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에는 유럽이 시베리아보다 더 추워 얼음이 북부 프랑스를 덮고 있었으나 북위 60도선 이남의 시베리아는 얼지 않았다. 이때 유라시아 초원을 차지한 초기 인류는 삼림지역에 사는 이웃들과 비슷하였다. 유라시아 어느 곳이든 구석기 도구와 병기를 이용하는 수렵, 채집인이, 곡류를 재배하고 동물을 가축화하며 도기를 색칠하는 신석기 농경민으로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초원에 사는 수렵, 채집인의 결정적인 발전은 말을 가축화한 것으로, BC 4,000년경 유목민들은 스텝남부에서 가축화한 소, , 염소를 키우는 것과 동시에 말떼를 집단 사육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집단화된 가축은 풀이 자라는 속도보다 더 빨리 풀을 먹어 치웠으므로 가축을 불리기 위해서는 유목생활이 필요하게 되어, 작물을 키우고 가축을 기르는 사람과 오로지 양떼와 소떼의 제품에만 의존하여 연중 이 목장에서 저 목장으로 이동하는 사람간에는 분명한 구분이 생기게 되었다. , 초원에 사는 사람들은 점차 그들의 채집생활양식을 버리고 정착농업생활을 했지만 말을 기르면서부터 그들의 생활방식은 다시 목초지를 찾아도는 이동생활로 바뀌었다.

 

아마 유목은 인류가 어미 젖꼭지에서 새끼 숫양과 숫 송아지 그리고 망아지를 떼어놓는 새로운 생태적 방식을 발견하여 주로 동물의 젖과 유제품을 새로운 식량 원으로 하여 살아가는 것을 배운 후에야 확실히 독자적으로 발전되었을 것이다. 젖을 분비하는 동물들을 길들여 사람의 손으로 젖을 짤 수 있게 하도록 만들어야 했으며, 어린이가 모유를 소화시키는데 필요한 효소를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 분비하도록 유목민은 생리적으로 적응되어야 했다. 이러한 적응을 하는데는 분명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출처: http://kr.blog.yahoo.com/mongoltour/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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