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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속의 단군 관련 자료 모음

2019.08.04 07:07

관리자 조회 수:3

제석거리, 성조거리, 별성거리....

제석본풀이 - 전국에서 전승되는 무속신화

전승지역에 따라 성인노리푸념(강계삼태자풀이(평양셍굿·당금아기·시준풀이(강릉제석풀이·초공본풀이(제주) 등으로 불린다.

 

지금까지 제석본풀이는 전국에서 약 40여 편이 채록되었는데 각 편의 공통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아름다운 딸아기를 둔 명문대가가 있었는데 가족들은 불가피한 일로 집을 떠나고 딸아기만 남아 있게 된다. 이때 법술이 높은 중이 딸아기의 인물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시주를 받으며 수작하고 간 뒤 딸아기는 잉태하게 된다. 가족들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알고 딸아기를 쫓아낸다. 딸아기는 아들 3형제를 낳고 중을 만난 뒤 자신은 삼신이 되고 아들들은 제석신이 된다.

 

이러한 내용은 전승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남한강을 남북의 경계로 하고, 소백산맥을 동서의 경계로 하여 한반도 동북지역 전승본과 서남지역 전승본, 그리고 제주도지역 전승본으로 나누어진다.

 

동북지역본은 딸아기가 시주 온 중과 별당에서 함께 자며 꿈속에서 구슬을 받고 잉태를 한 뒤 토굴 속에서 아들 3형제를 낳는다. 아들들이 자라서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졸라 중을 찾아가니 중은 친아들임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들을 치른 뒤 아들로 인정한다.

 

서남지역본은 중이 시주를 받아가면서 집어준 쌀 세 톨을 삼키고 딸아기는 잉태를 한다. 쫓겨난 딸아기가 중을 찾아가서 아이를 낳자 중은 중노릇을 그만두고 딸아기와 살림을 차린다. 제주도본에는 과거를 보다가 중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낙방한 자지명아기의 아들들이 무당노릇을 배워 무업을 시작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이 무가의 신화적 기능이나 의미는 전승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석본풀이의 본래 모습은 무속의 생산신 신화로서 한국의 고대 건국신화와 같은 성격을 가지는 천부지모형 신화였을 것으로 보인다.

 

제석본풀이는 재수굿·별신굿 등의 기복제 무의에서 구연되었다. 기원적으로는 '영고'·'무천'·'동맹' 등 고대 제천의식과 같은 촌락공동체의 수호신에 대한 제전에서 비롯되었으며, 굿의 목적은 인간의 출산과 농경의 풍요를 기원하는 데 있었다.

 

경기도 양주에서는 제석거리 뒤에 풍농을 비는 소놀이굿이 이어지며 햇곡식을 담아 모시는 '제석단지''시준단지'의 습속은 무속의 제석신이 농경생산신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점에서 제석본풀이는 무속의 생산신 신화가 불교 전래 이후에 변모된 것으로 생각된다.

 

여주인공의 명칭은 '서장애기'(평양)·'세주애기'·'제석님네 맏딸아기'·'당금아기'(강릉·양평·수원)·'자지명아기'(제주도) 등으로 다양하나 고유한 명칭은 '당금아기'이며, 이는 '마을신'이나 '골짜기의 신'이란 의미를 가지는 '이미지이미지'에서 유래한 말이다. 중으로 나타나는 남주인공은 여성에게 잉태를 시키는 파계승의 행각을 벌이지만 오히려 신성시되고 있다는 점, 천상에 살면서 박씨로 자신의 신분을 암시했다는 점에서 천신적 존재임이 드러난다.

 

이렇게 볼 때 제석본풀이는 천신계의 남성과 지신계의 여성이 결합하여 새로운 생산신을 출산하는 신화로서, 단군신화주몽신화등 고대건국 신화와 같은 뿌리에서 형성되었으나 전승과정에서 불교의 영향으로 변모된 무속신화임이 확인된다.

-출처:https://blog.naver.com/mooae1212/221260987899


무속이야기 제석거리(칠성거리)

현재 굿거리 중에서 제일 큰 거리라고 하는 칠성거리는 칠성제석거리 혹은 제석거리로도 불린다. 여기서 제석은 현재 불교의 신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제석은 불교의 신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조상 삼신할머니를 말한다. 천지인을 말하고 한인천제, 한웅천왕, 단군왕검을 다른 말로 부른 것이다.

 

<무당내력>에 보면 제석은 단군성조를 말하고 이를 삼신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즉 제석(帝釋)은 곧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의 5세 한인천제의 이름이 석제임(釋堤壬) 한인이 계시는 것을

보아도 이미 석이라는 의미의 문자는 한국시대에 사용하였다고 봐야 한다.

또한 단군왕검이 석가모니보다 약 1900여 년 먼저 태어나 제석으로도 불렸건만 언제부터인가 제석은 불교의 신으로 구분되어졌다. 그러나 칠성제석거리는 삼신할머니와 한인, 한웅, 단군왕검을 칠성과 동일시하는 관점에서 단군시절에 팔가(八加) 중 학가(鶴加) 제일 먼저 시작을 하여 학가(鶴加)가 담당한 굿이 아닌가 한다. 학가가 제일 먼저 시작하였다고 보는 것은 칠성거리의 춤사위에서 학이 날개 짓을 하면서 나는 형상을 나타내는 듯한 춤사위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칠성제석거리는 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의 칠성제석거리에서 중(僧侶)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고려시대 불교가 성행하면서 시류에 밝은 어떤 무당이 승려의 영향을 받아 슬쩍 같다 붙인 것이 계속 이어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민족은 칠성신앙을 믿는다. 무가에도 있듯이 칠성의 종류는 많이 있다. 이것은 여러 칠성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신인 칠성님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한다. 우물가에도 칠성님이 계시고 장독대에도 칠성님이 계신다. 산에는 바위칠성이 계신다. 칠성님은 인간의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고 있다.

 

우리 할머니들은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장독대에다 정한수를 떠놓고 칠성님께 빌었다. 이는 장독은 낮에는 빛이 잘 드는 곳이며 밤에는 달빛이 바로 비추는 곳이다. 이곳에 정한수를 떠놓고 비는 것은 정한 수에 곧장 칠성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또 우물가에서 칠성을 비는 이유는 우물을 바로 칠성이 비춰지기 때문에 우물이 바로 칠성이고, 우리 나라의 우물들은 원형보다는 정()자 형태의 우물이 많은데 정()자가 바로 칠성을 뜻하기 때문인 것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절 토기에 우물 정()자의 표시가 있었다고 광개토대왕의 문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광개토대왕의 문장이 아니라 칠성을 섬기는 고구려의 문장인 것이다. 즉 칠성이라는 뜻으로 보면 될 것이다. 아마 우물 정()자가 들어 있는 토기들은 칠성님께 제를 지낼 때 사용하였던 토기들이 아닌가 한다. 일본에서도 우물 정()자가 새겨져 있는 토기가 발견된다는 것은 고구려군이 일본에 진출하여 그곳에서 칠성님께 승리에 대한 감사의 제를 올렸다고 볼 수가 있다.

 

우리들은 죽어서도 칠성님에게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시신을 안치하는 칠성 판이 그렇고 송장을 일곱 매듭으로 묶는 것 또한 칠성님을 나타낸다. 그러나 지금의 칠성 판에는 일곱 개의 별이 없다. 칠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죽어서 가기는 가는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일깨워 준 칠성에서 태어나 칠성으로 돌아간다는 칠성신앙을 송두리째 까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칠성신앙에서 비롯된 숫자가 37이다. 우리만 일곱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 3이란 숫자는 특히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좋아한다. 물론 일본도 3이라는 숫자를 우리 못지 않게 좋아한다. 우리는 3이라는 것이 생활, 의식 음악, 환경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3이라는 숫자는 가장 안정적인 숫자가 아닌가 한다. 이것은 삼신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을 하며 또 삼신을 믿고 있는 사실이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렇듯 인간에게 명을 주는 삼신과 명을 이어주고 복을 주고 죽음을 관장하는 칠성신과 우리의 뿌리인 한인, 한웅, 단군왕검을 받드는 굿거리이니 제일 큰 거리일 수밖에 없다.

 

충청도 영동지역의 칠성거리 무가에는 삼황이라는 말이 나온다. 노고담의 <무사강론>을 보면, “삼황은 하늘의 주재자인 천황과 땅의 주재자인 지황, 그리고 사람인 인황인 것이다. 이들을 모두 주재하는 것은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곧 우리의 삼신이 되시니 ()방인 북쪽하늘을 열어 양기를 태어나게 하시니 이를 천황이라 하고 축()방인 북동북쪽을 열어 음기를 태어나게 하시고, ()방인 동북쪽을 열어 음기와 양기를 조화시키는 인황을 태어나게 하셨다.’ ”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음양조화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또 삼태성이라는 말이 나온다. 삼태성은 북두칠성을 보좌하는 별로서 머리부분과 꼬리부분에 하나씩 있는 삼공(三公)을 말한다. 오래된 무당들이 사용하는 명도에는 반드시 해와 달 그리고 북두칠성이 즉 천부삼인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한 명도가 많이 있다. 명도에 해와 달 북두칠성이 빠져 있는 것은 하느님의 직인이 빠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즉 가짜 엉터리 명도라는 것이다.

 

북두칠성은 동북 간방의 하늘에서 뜬다.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는 방위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가 동북 간방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토종들이 우수하고 지구상 식물의 종자가 되는 것이다. 토종학회에 따르면 외국의 종자회사들이 우리 나라의 수많은 종자를 수집하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한다. 현재 우리가 우리의 굿을 천대하고 멸시하듯 우리의 토종을, 종자를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생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이 비추는 동북 간방에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칠성이 우리의 큰 신으로 모셔진다. 그러나 칠성제석거리가 이상하게도 불교의 냄새를 짙게 풍기면서 자꾸만 변질되어 불사거리라고도 한다. 현재의 칠성거리는 무당이 장삼을 입고 바랑을 메고 염주를 목에 건 중의 복색을 하고 굿을 한다. 또한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도 한다. 이는 정말 잘못된 것으로 칠성의 의미를 모르고 삼신의 의미를 모르는 무당들에 의하여 아니면 불교의 잠식에 의하여 변질되어 우리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굿이다. 우리의 굿이 살아남기 위하여 시대에 따라 변천하였다 하더라도 너무나 많이 왜곡된 아주 잘못된 부분들이다. 언젠가는 칠성제석거리의 무가를 제대로 다시 잡아야 할 것이다.

 

또한 당금애기씨 이야기 등 칠성제석거리와 관련된 많은 부분들이 불교화되어 있다. 이런 많은 부분들을 우리들 스스로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조성제-출처:http://blog.daum.net/bolee591/6052689

성주(城主)거리와 고시례를 모시는 별성거리

우리 굿거리 중에서 성조, 성주거리가 있다. 성조라 하면 성을 축성하는 일이 되고 성주라 하면 그 성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우리 무교에서는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즉 성주굿을 할 때에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성주는 또 제가집(굿을 하는 집안)의 대주(남자)를 가리키는 말도 되지만 집을 짓고 집안이 편안하도록 지켜주는 신을 성주신이라 하기도 한다. 성조라는 사람이 옛날 한웅천왕 때부터 있었다. 성조는 한웅천왕 시절부터 단군에 이르기까지 집을 짓는 일 즉 성을 쌓는 일을 관장하는 사람이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의, , 주 세 가지 중 주거를 처음으로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 후 성조는 후손들로부터 집안에 제일 높은 신으로 받들어져 우리 조상들이 집을 지을 때는 성조님 덕으로 이렇게 집을 짓게 되었으니 부디 사고 없이 집을 짓게 하여 달라고 굿을 하게 되었고, 또한 10월 상달이면 어김없이 집안에 모셔져 있는 성주신에게 감사의 굿을 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성주굿의 유례인 것이다.

 

또한 고시례라는 말은 우리가 많이 들었다. 들판에 나가서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음식을 조금 떼어내어 고시례를 한다. 왜 고시례를 하는 것일까? 어떤 이는 들판에 잡귀신에게 준다 하고, 또 다른 이는 들짐승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조상인 고시님에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주어서 감사하다는 의식인 것이다. 고시는 한웅천왕 시절부터 곡식을 담당하던 우리의 조상이다. 만사도통주라는 주문을 보면 성광고시 대선관 인간복록 대곡신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고시는 하늘의 별로 표현을 하였다는 말로도 된다. 또한 인간복록을 관장하는, 즉 곡식을 관장하는 큰 신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니 고시를 신으로 승격시키면서 자연히 별과 연관지었고 고시를 신으로 승격시켜 모시는 굿이 별성거리이다. 고시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예의를 표하는 것이 고시례다. 그러니 앞으로 들판이나 혹은 집안에서 고시례를 할 기회가 생기면 우리의 조상인 고시례님에게 먹을 양식을 주시어 감사하다는 마음과 함께 좀더 엄숙한 마음으로 하여야 하겠다.

 

<무당내력>을 보면 별성거리는 고시례를 반드시 청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별성거리나 성조거리를 하기 전에는 반드시 단군 청배를 먼저 하고 난 뒤에 성조와 별성을 청배하여야 한다. 그리고 잔은 두 잔을 올린다. 만약 한 잔만 올린 경우 단군만 청배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성제출처: http://blog.daum.net/bolee591/7424816


【<무당내력>(작은책)

성주거리

단군시절 매해 시월에 무녀로 하여금 가옥을 지은것을 축하하도록 하였는대

그 뜻은 인민이 그 근본을 잊지 않도록 함이다

치성시에는 의례히 거행한다

속칭 "성주푸리(성주풀이)"라고 한다

수원,안성 등 경기 남부에 전승되는

성주 신화는

황산뜰에 대목 (대목장) 황우양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황우양씨는 하늘에 옥황상제로부터 쇠동풍으로 쓰러진

천상에 궁월을 다시 지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황우양씨는 부인이 만들어준 연장을 가지고 소진뜰을 지나다가

누구와도 말하지 말라던 부인의 당부를 저버리고

소진랑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소진랑은 재액을 예방해준다고 황우양씨와 옷을 바꾸어 입고 황우양씨 부인이 천하절색 이란 소문을 듣고

황우뜰로 와서 부인을 납치한다

부인은 소진뜰로 잡혀와 결혼을 강요하는 소진랑에게 몸이 부정하다고 구메밥 삼년을 먹으며 혼사를 지연한다

이 사이 황우양씨는 몽사가 이상하여 점복을 해 보고

부인이 변고를 당한것을 알고 급히 내려와 소진랑을 징치하고

부인과 함께 황우뜰로 다시 돌아와 폐허가 된 곳에서

새로 가옥을 짓고 부부해로한다

후에 황우양씨는 성조신이 되고 부인은 지신이 된다


  <무당내력> (작은 책)

​제석거리

 

단군을 일컬어

삼신제석이라고 하는데

고구려 산상왕이

아들이 없어

삼신에게 아들 점지를 빌어

과연 귀자를 얻었다

그런까닭에

아들 낳기를 발원하는

습속이 생겼다

 

(큰책)

제석은 곧 단군 성조인데

일컫기를

삼신제석이라고 한다

어린아이 열살 이내에

혹 위험한 곳이 있으면

삼신이 보호 한다고 한다

옛날 고구려 산상왕이

아들이 없어

삼신에게 빌어

꿈에서 만나보고

귀자를 낳았다

후에

아들 낳기를 발원하면서

그로 인하여

습속이 되었다


<무당내력>(작은책)

​별성거리

단군 시신(侍臣) 고시례(高矢禮)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것을 가르쳤으므로

인민이 그 은혜를

잊지못하여

단군을 청배할때

이를 별성이라고

이른다

근일에는

무녀가 최장군을

청배할때

사도세자를 배행 한다고 하는데

이는 횡설수설이

매우 심한것이다

   

<무당내력>(큰책)

단군청배시에

시신(侍臣) 고시례가

처음으로 백곡을 파종해서

백성에게

농사 짓는 법을 가르쳤으므로

백성이 그 은혜를

잊지 못하였다

근일에는

사도세자를 말한다고 하는데

이는 횡설수설이

매우 심한 것이다


 <무당내력>  (작은책)

​- 대거리 -

속칭

최영장군거리

단군을 청배한 뒤에

성스러운 뜻으로

소원을 이루도록 해준다고 하는데

옛시절에는

단군의 복색을 사용 했는데

근일에는

최장군 복색을 쓴다

 

<무당내력>(큰책)

대거리

또는

최장군거리

단군을 받들어 모신뒤에

성스러운 뜻으로

소원을 이루도록 해준다고하는데

근일에는

최장군이 하강한다고 이른다

​​

이러한 설명을 보면 큰거리가 옛날에는 단군을 모시던 거리였는데

근일에는 최장군을 모시는 거리로 바뀌어 졌고 복색또한 바뀐것을 알수있다

고려때 서울인 개성을 중심으로 최영장군에 대한 신앙이 두드러졌는데 개성 덕물산 위에 무신당을 세우고

최영장군을 주신으로 모시고 장군의 제일부인인 "상산부인" 제 이부인인 "의일 장군"도 함께 신으로 모신다

-출처: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hma1377&logNo=221464309128


철무리굿 초감흥굿의 감흥은 단군왕검이다

철무리굿 초감흥굿의 감흥은 단군왕검이다

 

철무리굿은 하늘과 땅과 사람에게서 영부정을 쳐내고 나서 초감흥굿으로 들어간다. 초감흥굿을 초···굿으로 나누어 보면, 초감흥굿에서 감흥의 의미가 무엇인가가 밝혀진다. 이 검을 감으로 대체한 말임을 알 수 있게 되고, 감흥感興에 단군왕검을 모셔드린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필자는 2000<문학마을>이라는 계간지로부터, <문학과 무속신앙>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 달라는 원고청탁을 받고, 200자 원고지 183매 분량의 <사라진 원형문화와 원형종교>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2000년 봄호에 실었던 적이 있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우리 역사 1만년 중에, 마고지나와 한국시대에 삼신교三神敎, 배달나라시대에 태백진교太白眞敎, 단군왕검시대에 덕교德敎(神敎)가 있었음을 밝히고, 단군조선에서 부루단군이 돌아가시고 가륵단군이 뒤를 이었을 때, 처음 공식적으로 여무女巫가 탄생하였고, 단군왕검을 청배하는 무교巫敎가 발생하여, 무교가 여무에 의하여 존속되어 왔다고 밝힌 바가 있다.

 

그러나 진시황 8년에 단군조선이 진에게 멸망하여, 47세 고열가단군이 구월산에 은거하기 시작하면서, 무교는 종교적인 가르침을 버리고 굿이라는 무의식으로만 존속되어 왔다. 언제부터인가 황해도 문화현 구월산에 한인 한웅 단군왕검 3분 조상을 모신 삼성당(삼성사)을 짓고, 여무女巫로 하여금 당주가 되어 삼성사를 지키게 하였다. 삼성사에서의 제사는 무교의식인 굿으로 치러졌고, 나라에서 제관을 임명하여 향과 초를 내려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다. 그러나 조선조 세종 때, 한인 한웅의 제사를 폐지하고, 고구려 추모왕과 고려 태조왕의 제사로 대체하였다. 같은 때에 삼성제례를 평양에서 지내기 시작하였는데, 삼성당을 폐지하면서, 문화현은 괴질이 돌아, 폐촌이 되고 말았다.

 

생각건대, 단군왕검굿인 감흥굿의 처음 이름은 검흥儉興굿이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무당내력>은 감흥굿을 할 때, 무당이 반드시 감흥청배感興請陪3번 외친다고 하였다. 필자는 애초에는 감흥청배를 외치지 않고, 검흥청배儉興請陪3번 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 검흥청배를 3번 외쳤을까? 여기에 모든 종교에서 쓰는 경의 원조가 되는 <천부경>의 사자경문四字經文인 일석삼극一析三極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본다. 검흥청배를 3회 반복하는 것을 무당이 하늘에 보내는 짧고 강렬한 기도의 한 형식으로 보는 것이다.

 

은 고의 변음이다. 는 우리의 시조가 되는 마고麻姑에게서 처음 쓰게 된 말로 여신, 할머니, 어머니, 이모, 고모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최초의 여신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고가 검으로 변음이 되면서 검은 남신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후로 감, 가미 등으로 변음이 되었다. 검흥청배하면 단군왕검을 청배한다는 뜻 이외에 남신을 청배한다는 의미도 복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 굿에서 가장 신명이 높은 굿거리가 초감흥굿이라고 하겠다. 초감흥굿에서 초는 부른다는 의미의 초이다.

 

규장각 보관 문서인 <무당내력巫堂來歷>에서 감응신이 어떠한 신인가를 밝혀 보기로 한다.

感應請陪

致誠時 巫女手執白紙 望太白山口呼 聖靈感應 三遍謂之

檀君請陪 近日謂之 崔將軍請陪 失眞大矣

치성할 때 무녀가 백지 3장을 들고 태백산을 바라보며 단군을 청배하는 성령감응을 3번 외친다. 최근에는 최장군청배라고 하는데 큰 뜻을 잃었다.

 

<무당내력>은 조전말기에 만든 무당 책인데, 이 책에 감응이 단군왕검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무당이 단군왕검을 청배할 때는 백지 3장을 들고 성령감응을 크게 외친다. 성령이 곧 단군왕검이기 때문에 모셔드리기 위하여 외치는 것이다. <무당내력>은 단군왕검을 청배하는 거리가 감응청배인데, 후대에 와서는 최영장군을 청배하는 거리로 바뀌었다는 기막힌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래서 큰 뜻, 즉 단군왕검을 잃었다고 한 것이다. 단군왕검을 잃으니 검흥이란 말도 사라져 감응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창부거리에서도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창부는 창수사자부루태자蒼水使者夫婁太子의 준 말이다. 단군왕검시대에는 홍수로 시달리던 시대였다. 순임금이 단군왕검에게 홍수매기에 대하여 한 수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을 때, 단군왕검은 부루태자에게 창수사자라는 관직을 주어, 우사공(후에 순임금을 죽이고 우임금이 됨)에게 보냈다. 그래서 부루태자가 창부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가 홍수매기를 했음이 창부거리 홍수매기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부굿에서 부루태자는 노래 잘하고 피리 잘 부는 파락호 주정뱅이처럼 등장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초감흥굿에서는 단군왕검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을까? 이제부터 초감흥굿에서 감흥을 단군왕검-단군으로 대체하여 집어넣고 검색하여 단군왕검을 찾아보기로 한다. 감흥이라는 문자 대신에 단군이라는 문자를 넣고 단군왕검을 복원시켜 보자는 것이다.

 

단군신령님이 산(구월산)에서 새니 잠인들 올 소냐

단군신령님 맞으라고 사시삼경四時三更을 서서 새와()

오늘(올릴) 반두() 열두 반 / 내릴 반두() 열두 반 / 스물 네반 거동 속에(24계절 내내 넋반을 받쳐 들어 스물네 번 다 넋을 받든다는 뜻)

내려 깔아 화몽석(花紋席) / 치깔아서 용몽석(龍紋席) / 돋아 깔아 별몽석(星紋席)

안당(부인을 모신 당) 밧당(남편을 모신 당)은 내외 삼당(내외를 합사해 모신 당)을 둘러매고 / 서리당 둘러매고(이상 무당이 삼성당 모형을 둘러맨 듯)

안당 밧()당을 꾸며 놓고 / 사위삼당을 배설(둘러맨 삼성당 모형을 굿당에 배설)해서 /

()비당(단군왕검을 따라오는 수비들이 들어갈 당집)을 꺾어 놓고

백마지(백기白旗?) 너울 속에 / 홍마지(홍기紅旗?) 그늘 속에

열두(여섯) 줄에 거문고(儉之鼓)/ 만근다리(짜리) 태징소리 / 천근다리(짜리) 제금소리 /

쉬흔 세 살 아흔아홉은 상쇠소리(거문고, 태징, 제금, 상쇠는 굿청에서 단군을 청배할 때 무악을 연주하는 악기)

단군신령님 오실 적에 / 무슨 옷(신복)을 입고 왔소

혼술(솔기) 없는 곤룡포(단군왕검이 임금 옷을 입었다는 뜻)/ ()기 없는 활옷이라

단군신령 쓰신 갓은 무스나 갓을 쓰셨소(굿을 할 때 신령의 표시로 갓을 썼다는 의미)

한양 가서 갓을 사니 / 끈이 없는 것을 샀소

들고 보니 빗갓이요 / 쓰고 보니 통영갓일세

울 밑에 유자를 심어 / 3일 만에 아귀가 트고

7일 만에 싹이 나고 / 15일 만에 속잎 되고

속잎 자라 겉잎 되고 / 잎은 돋아 청청하고

꽃은 피어 만말 하고 / 봉황 (풍이족의 종족 아이콘인 뱀문양의 변형문양)한 쌍이 내려앉아

/ 상깃을 솎아 / 단군신령님 갓에 올리시고

건국(조선을 건국)영정에 / 수천 갓끈이 제격이라

단군신령님 앞으로는 청학흉배 / 뒤로는 백학홍배(학은 단군왕검이 다스린 鶴加)

단군신령 타신 말은 적토마가 제격이라

딛는 발굽에 굽을 놓아 / 뛰는 말에 채를 놓아

백모래로 길을 닦고 / ()모래로 다리 놓아

천자국(단국)을 들어가서 / 대국천자(홍제) 배례하여

12 발 송상끈을 제공받아

12 병주를 허리에 둘러 띠니 / 단군님 본이로다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59,60)

(( )안의 글 필자, 진한 글 필자 보충 및 해설)

 

본문은 초감흥굿에서 단군왕검을 청배하는 사설의 일부이다. 이해하기 쉽게 좀더 풀어 보기로 한다.

 

굿을 하는 날은 구월산에서 단군왕검신령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밤을 새운다.

그래서 신을 받으러 간 무당은 사시(四時, 아침 점심 저녁 밤) 삼경(三更, 子時, 11~01, 신이 강림하는 시간)을 서서 세운다.
단군왕검 신을 받을 때는 넋을 받는 넋반을 가지고 와서 받는다.
넋을 받을 때 올려 받는 게 12, 또 내려 받는 게 12. 양기가 승한 1~6월은 올려 받고, 음기가 승한 7~12월은 내려 받는다. 모두 24절기가 드는 날만 24회 넋을 받는다.

 

굿청에 돗자리 3장을 까는데, 꽃을 수놓은 화문석 1장을 내려 깔고, 용무늬를 수놓은 용문석 1장을 치올려 깔고, 별무늬를 수놓은 별문석 1장을 돋아 깐다.

 

단군왕검을 모시는 당집을 만드는데, 부인을 모시는 당집은 안쪽에, 남편을 모시는 당집은 바깥에, 내외를 모시는 당집은 따로, 서리당(서리를 모신 당)도 따로 만들어 무당이 등에 진다.

 

등에 진 당집을 내려 동서남북 네 방위에 배설하는데, 동쪽에 밖당, 서쪽에 안당, 남쪽에 내외당, 북쪽에 서리당을 배설한다. (참고, 단군왕검은 웅녀, 하백녀 2분과 결혼했다)

 

단군왕검을 따라오는 수비들이 들어갈 수비당을 꺾어 놓고

흰 천을 서쪽에 깃발처럼 걸어놓아 웅심국왕의 따님 웅녀가 있음을 표시하고, 붉은 천을 남쪽에 걸어 하백녀가 있음을 표시한다.

 

무악을 연주하는 악사는 단군왕검을 상징하는 거문고를 준비하여 거문고 소리를 내고,

만근짜리 태징(太金)을 울려 징소리를 내고, 천근짜리 제금을 울려 제금소리를 내고,

53개의 방울을 단 상쇠, 99개의 방울을 단 상쇠를 울려 단군왕검을 청배한다. (이때 관악기를 쓰지 않는 다는 점에 유념하도록)

(청배를 받은 단군왕검신령이 넋반에 모셔져 굿청으로 들어오신다. 영으로 들어오시므로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무당이 단군왕검의 모습을 굿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사설로 알려준다.)

 

단군왕검이 오실 적에 무슨 옷을 입고 오셨을까?

바느질하지 않은 곤룡포를 입고 오신다. (곤룡포는 용을 수놓은 임금이 입는 옷이다. 뱀을 종족의 아이콘으로 썼던 한인천제가 처음 용문양을 수놓은 곤룡포를 입은 이래로 역대의 왕들이 모두 곤룡포를 입었다. 한인천제를 안파견安巴堅이라고 하였는데, 는 용을 뜻하는 문자이다.)

 

단군왕검의 부인들이 솔기 없는 활옷(공주와 옹주가 대례 때 입는 옷)을 입었다.

단군왕검은 신령의 표시로 갓을 쓰셨다.(무당이 갓을 쓰고 단군왕검을 대리하고 있다는 표시)

한양 가서 갓을 사니 / 끈이 없는 것을 샀소 / 들고 보니 빗갓이요 / 쓰고 보니 통영갓일세

(무당이 빗갓을 사오게 된 경위를 사설로 풀어내고 있다)

빗갓에는 봉황이 따온 유자꽃을 장식한다. (봉황은 풍이족의 종족 아이콘인 뱀이 변화하여 된 새이다. 뱀이 용이 되고, 용이 봉황이 된 것이다. 풍이족이 동이족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봉황으로 설명하고 있다)

유자꽃은 유자를 심어서 / 3일 만에 아귀가 트고 / 7일 만에 싹이 나고 / 15일 만에 속잎 되고 / 속잎 자라 겉잎 되고 / 잎이 돋아 청청하고 / 꽃은 피어 만발한 것을 쓴다.

봉황 한 쌍이 내려앉아 / 상깃(맨 위에 나온 꽃)을 솎아 / 단군신령님 갓에 올린다.

 

놀랍게도 무당이 단군왕검이 조선을 선포할 때 한 쌍의 봉황이 물고 있는 유자꽃을 장식한 빗갓을 쓰고 있었다고 사설한다. 이때 하객으로 모인 빗갓을 쓴 사람이 수천 명이나 된다.

 

단군왕검은 입고 계신 곤룡표에 흉배를 붙였는데, 앞에는 청학흉배를 붙였고, 뒤에는 백학흉배를 붙였다. (청학과 백학은 단군왕검이 다스린 팔가八加에 속한 종족들이다)

단군신령은 적토마를 타고 오신다. (적토마와 백마는 신장을 그린 무신도에 자주 등장한다)

딛는 발굽에 굽을 놓아 / 뛰는 말에 채를 놓아 / 백모래로 길을 닦고 / ()모래로 다리 놓아 오신다. (모래 위로 오시는 것으로 보아서 바다 건너에서 오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천자국(단군왕검이 대감이 된 단국檀國)을 들어가서 / 대국천자(단국의 홍제洪帝) 배례하고, 12 발 송상끈을 제공받아 / 12 병주를 허리에 둘러 띤다. (송상끈으로 병주를 허리에 묶는다고 했는데, 이는 조선을 다스리라는 뜻으로 준 증표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단군왕검은 무당을 통하여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단군왕검의 이러한 모습이 단군님의 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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