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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 시조 즉 우리 민족 근조(根祖)를 모신 곳이 산신각, 삼성당임을 밝히고 있는 글입니다.

동이의 시조를 모신 산신각과 삼성당

 산신각은 절에 가면 볼 수 있다. 산신각에는 산신도가 모셔져 있다. 산신과 백호를 그린 그림이 산신도인데, 백호 2 마리가 호위하는 산신은 배달나라를 세운 한웅천왕이고, 백호 1마리가 호위하는 산신은 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이다. 이 두 분을 태양의 화신으로 보기 때문에 태양을 호위하는 금성을 백호로 그려 호위신장으로 모신 것이다. 산신각은 단군조선시대에 12명산을 정하여 소도를 세우면서 소도에 세웠다가, 전국 각지에 한웅천왕을 모시는 대웅전이 세워지면서, 대웅전의 뒤에 지어 그 수가 늘어났다.

 

삼성당은 삼성사라고도 하는데, 단군조선이 진에게 멸망하면서, 단군조선의 마지막 단군인 제47세 고열가 단군이 황해도 구월산에 들어가서 세우고, 한인· 한웅· 단군왕검 세 분을 모시고 제사지낸 곳이다. 이곳에서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렸는데, 기우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조선왕조에서는 이 제사를 삼성제례라고 하였다. 일제가 국토를 강점하면서 제사가 폐지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97년에 서울의 강북문화원이 조선왕조시대에 중사를 지냈던 삼각산에서 이를 복원하여 지내오고 있다.

 


1. 九黎東夷의 시조사당 산신각

산신각은 대게 정면에 3칸 측면에 칸 반의 크기로 짓는데, 지붕을 맞배지붕으로 한다. 가운데에 두 쪽의 문을 내고, 우측 벽면에 한쪽 문을 내어 출입하도록 한다. 가운데 두 족의 문은 제사를 지낼 때 쓰고, 평소에 측문으로 출입한다.

 

산신각에는 산신을 누구로 모시느냐에 따라서 백호 1마리가 호위하는 산신과 백호 2마리가 호위하는 산신 두 분 중에서 한 분을 모신다. 바다가 있는 곳이나, 용신을 모셔야 할 곳에는 용신각을 지어서 용신을 모신다. 용신각에는 백호 대신에 용을 용신의 수호신으로 그린다.

 

산신도에 그려지는 백호는 인종 아이콘이다. 용은 부루단군이 다스린 용가龍加의 아이콘으로 보고, 백호는 부루단군이 단군왕검의 명을 받들어 호가虎加를 버리고 용가로 호칭(단군왕검 임진 25BC 2309)하게 된 쓸모없는 인종 아이콘으로 본다. 를 백호白虎를 쓴 것은 백호의 백이 사라져 없음을 뜻한다. 백을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것은 뮤 제국시대로부터 전수해 내려오는 유습이다.

 

사라진 호가의 인종 아이콘인 백호를 곁에 끼고 있는 할아버지는 <산해경山海經>에 기록된 대인大人이다.

 

군자국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있으며, 짐승을 잡아먹는다. 두 마리의 무늬호랑이를 부려 곁에 두고 있으며, 그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다.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나와 저녁에 죽는다. 말하기를 간유시의 북쪽에 있다고도 한다. (재간유지시북在肝楡之尸北)” (<산해경> 해외동경海外東經 5 정재서 역 민음사)

 

여기에서 중요한 말은 在肝楡之尸北이다. 이 문자는 <산해경> 해외동경 4에 있는 肝楡之尸在大人北과 같은 문장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석자들이 이 문장을 제대로 해석한 사람이 없었다. 지나支那 쪽 사람은 해석을 하면 득이 될 것이 없다고 보아 해석을 하지 않았고, 우리 쪽 사람은 역사를 몰라서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在肝楡之尸北는 시자에 해석의 포인트가 있다. 를 임금, 칠성으로 해석하느냐, 염하지 않은 시체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시를 임금시나 칠성시로 볼 때는 동이의 문자로 볼 때이고, 염하지 않은 시체시자로 볼 때는 하화의 문자로 볼 때이다. 후한後漢 때 허신許愼<설문해자>를 썼는데, <설문해자>에서, 허신이 새로운 해석을 가하지 않은 기존의 문자를 동이의 문자로 보고, 새로운 해석을 가한 문자를 하화의 문자로 보아야 하는데, 이렇게 동이문자와 하화문자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한 후에, 在肝楡之尸北을 해석하면 문자해석에서 범하게 되는 오류를 막을 수 있다.

 

를 고유한 한자桓字인 동이의 문자로 보면, 유지시楡之尸는 유망국楡罔國의 임금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유지시의 앞에 있는 간은 간이라도 내 줄만큼 충성스럽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在肝楡之尸北은 북쪽에 있는 충성스런 유망국의 임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간유지시의 북쪽에 있는 것이 대인이므로, 유를 유망국으로 보면 대인은 대인국, 즉 치우천왕이 다스리는 청구국이 된다. 따라서 유망국의 임금이 대인국의 임금인 청구국의 치우천왕에게 충성하고 있음을 나타낸 글이 在肝楡之尸北이다. 다시 말해서 유망이 치우천왕에게 충성하고 있음을 뜻하는 문장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망이 유백국의 임금을 할 때는 중원 대륙에 황제의 황제국, 치우천왕의 청구국이 함께 있었다.

 

유망국은 산동반도의 곡부曲阜에 있었다. 곡부의 북쪽이라면 탁록涿鹿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본문의 북자에서 탁록에 치우천왕이 다스리는 청구국이 있었음을 추론해 낼 수 있다. 탁록에 있었던 대인국이 바로 청구국이다. 탁록涿鹿의 탁涿은 강이라는 뜻이고, 鹿은 사슴이라는 뜻이다.

 

필자는 최근에 중국사람 양만연신라의 뿌리가 초나라라고 쓴 글에 대한 반론으로, “신라의 뿌리는 초나라가 아니라 탁록에 있었던 청구국라고 쓴 글에서, “단군조선의 마가馬加가 신라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청구국이 탁록에 있었음을 알리는 것이 신라 왕관의 측면에 꽂는 사슴뿔 관식이다. 임금이 사슴뿔 관식을 함으로써, 신라가 탁록에서 온 청구의 후예임을 나타내려 하였다고 본 것이다. 산신각에 모신 산신이 백호를 데리고 있는 것도 신라의 왕관에서 보여주는 사슴뿔로 본색을 밝히려는 의미와 유사한 의미가 있다. 족명이 용가로 대체되는 바람에 사라지게 된 호가를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산신도에서 백호가 그려지는 이유는 호가虎加를 폐하고 용가로 대체하였기 때문에 단군왕검이 이를 감싸 안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족명을 폐하여 지위가 낮아진 호가를 측근에 두었다고 보는 것이다. 백호가 죽음을 의미하는 백호사신白虎死神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러한 의식변화의 한 단 단면일 것이다.

 


 2. 삼성과 삼성사

단군신화에 나오는 한인 한웅 단군왕검 세 분을 삼성三聖이라고 하고, 이들 삼성에 올리는 제사를 삼성제례라고 한다. 유교를 숭상하던 시대에 이분들을 삼성으로 호칭한 것은 이분들이 임금이기 때문에 성인聖人으로 호칭한 것이다.

 

이분들의 신주를 모신 곳을 삼성당, 또는 삼성사라고 하는데, 구월산 문화현에 있다. 단군사를 평양에 짓고 옮겨가면서 삼성당에서 올리던 제사를 폐지하였다. 그러나 삼성당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고열가 단군이 삼성당 벽에 천부삼인을 걸어두었는데, 단군사로 위패를 옮겨가면서 천부삼인을 옮겨가지 않았기 때문에 무당들이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드릴 수 있었다. 천부삼인을 지금은 명두라고 한다.  

 

국토가 남북으로 갈라진 지금, 구월산 삼성사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으므로, 필자는 강북구에 문화원을 만들 때 참여하여, 삼각산축제라는 이름으로 삼성제례를 복원하였다. 문화원에서 국고지원을 받아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나라 돈으로 제사를 지내는 유일한 제사가 되었다.

 

조선조 세종 때 호조에서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에, “구리를 세금으로 바치게 하는데, , 종일품은 108품은 8냥쭝, 국무당國巫堂9, 전의 국무당은 8, 송악松嶽무당은 8, 덕적德積무당은 6, 삼성三聖무당은 6, 당무녀堂巫女2, 무녀는 1근을 수납하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당시에 무당이 내는 세금을 업세業稅라고 하였다.

 

국무당은 나라무당, 송악무당은 최영장군을 모신 덕물산신당의 무당, 덕적무당은 덕적도의 무당이다. 덕적도에는 단군조선의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 단군 때 만든 것으로 보이는 제천단지가 있고, 당집도 많았다고 전해 온다. 삼성무당은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의 무당이다.

 

삼성사의 무당이 세금을 구리로 6근을 내었다면, 상당히 높은 액수의 세금을 내었다고 볼 수 있다. 보통 무당이 1근의 구리를 내었으므로, 6배를 냈던 것이다.

 

삼성당 무당이 세금을 많이  것을 보면, 평상시에 삼성사를 백성들에게 개방해 놓았던 것으로 보이며, 백성들이 이곳에 와서 굿을 하거나 치성을 드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강북문화원에서 지내는 삼성제례는 초헌 아헌 종헌의 3헌관이 유교식으로 차를 올려 지내는데, 절은 삼육구배三六九拜를 올린다. 축문은 <천부경天符經>을 초헌관이 봉독하고, 대축이 <원방각경圓方角經>을 봉독한다.

 

축문을 <천부경>으로 대체한 이유는, 첫째, <천부경>이 한인천제 때부터 구전해 오는 인류 최고의 경문이기 때문이며, 둘째, 대축이 <원방각경>을 봉독하게 한 이유는<원방각경><천부경>의 보조경문이기 때문이다.

 

<성종실록>에는 나라에서 삼성제례를 기우제로 지내고 있으며, 제관은 현관縣官이 맞는다고 하였다. 신주는 한인천제 신주를 남향으로 모시고, 한웅천왕 신주를 서향으로 모시고, 단군왕검 신주를 동향으로 모신다고 하였으나, 삼각산 삼성제례에서는 모두 남향으로 모신다.

 

<성종실록>에는 삼성제례를 기후제로 지내면 반드시 영험함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평양에 단군사를 짓고 나서삼성당에서 제례를 폐지하자, 괴질이 돌아 민가가 모두 공가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단종실록>, <성종실록>) 만약 우리가 삼각산에서 년 동안 해온 제례를 폐지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올까혹시 서울시내에 괴질이 돌게 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3. 단군조선 제47세 고열가 단군이 세운 구월산의 삼성당

진시황 8년에 단군조선이 진에게 멸망했을 때, 단군조선의 마지막 왕검인 고열가단군은 구월산으로 은거했다. 역사기록자는 이 사건을 단군왕검이 신선이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아무 것도 기록되어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구월산에 연결되는 갖가지 단서를 추적해 보면 여기에 엄청난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미스터리를 해명하면 거대한 문화가 하나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 문화가 단군조선문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이점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학자가 아무런 연구 없이 황해도를 외국문물을 받아들여 온 곳으로 지례 짐작으로 확정한 데 있었다.

 

황해도는 중국과 여러 민족으로부터 많은 문화를 비교적 쉽게 그리고 빠르게 받아 들여왔던 곳이기도 하다. 황해도 무는 위와 같은 지리적, 문화적 배경 위에 살펴볼 수 있다. 해변가를 중심으로 한 해변굿과 내륙의 농경지 지역의 내륙굿, 그리고 산간지역의 산간굿 등으로 구분 발달되어 왔다.”(<황해도평산소놀음굿> 36

 

그러나 이런 말은 믿을 수 없는 말이다. 황해도가 굿의 중심이 되어 온 것은 사실이나 황해도에서 행해져 오던 굿들이 중국과 여러 민족으로부터 받아들였다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황해도와 인접한 곳이 중국의 발해만인데 발해만에서 황해도로 굿과 관련이 되는 문물을 수입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발해만은 단군조선시대에는 단군조선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의 발생지, 예맥족의 발생지가 발해만이다. 단군조선시대에는 동해빈東海濱이 수출입항이었고, 발해만 북쪽의 창덕부彰德府와 현덕부顯德府가 덕교德敎를 국시國是로 하였던 단군조선의 근거지였다. 단군조선에서 해시海市(바닷가에서 여는 신시神市, 초기단군조선에서는 10년에 한 번 신시를 열었다)를 열었을만한 곳이다. 이 시대에 단군조선에서 행하던 굿을 무천舞天이라고 하였다. 칠월칠석날 저녁에 하늘에 나란히 뜬 해와 달을 향하여 일월마지를 하는 것이 무천인데, 무천은 왕검만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제천행사祭天行事였다. 삼한시대에 동예東濊가 단군조선의 무천을 계승하였다.

 

入阿斯達山, 化神御天. , 大國九, 小國十二, 皆檀氏也. 太白·平壤, 俱在遼.滿之間, 阿斯達山卽文化縣.九月山, 一名白岳. 國人立廟饗之, 稱以三聖祠. 桓因·桓雄·桓儉, 是謂三神, 而桓儉卽檀君也.(<帝王年代歷> 崔致遠 編著)

(주 필자, 단군조선의 마지막 왕검인 제47세 고열가 단군이)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으로 화하여 하늘로 올라갔다.(주 필자, 우화등선羽化登仙했다는 말) 이때에 대국이 아홉, 소국이 열둘이었다. 모두 단군조선에 속한 나라들이다. '태백''평양'은 모두 요양과 만주의 사이에 있다. 아사달산은 바로 문화현의 구월산으로 '백악'이라고도 한다. 나라 사람들이 그곳에다 묘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며 '삼성사'라고 하였다. 한인· 한웅· 한검을 일컬어 '삼신'이라 하였는데, 한검이 곧 단군이다.

 

<제왕년대력>은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지을 때 인용하고 참고했음을 밝힌 대단히 중요한 기록이다. 신라 말의 사람 최치원 선생이 지었다. 최치원 선생은 위 기록에서 구월산에 삼성사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다. 이 말은 최치원 선생 시대에 이미 삼성사가 구월산에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성사를 지은 분이 고열가 단군이었을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해진다.

 

고열가 단군은 구월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신 분인데, <단군세기>에 따르면, 그가 신선이 되고자 입산한 때가 계해 58(BC 238)이다. <단군세기>는 고열가 단군이 입산수도하여 신선이 되셨다 (入山修道 登仙)”고 하였다.

 

구월산을 백악이라고도 하였는데, 단군조선이 발해만에 있는 평양에 도읍했을 때 평양의 주산이 백악이었으므로 구월산을 백악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평양이란 발해만의 평평한 들판이라는 뜻이다.

 

<문헌비고>에서는 백악白嶽은 지금의 문화현이며 구월산의 본명은 궐산闕山인데 단군의 궁궐터가 있기 때문이다. 궐산은 소리를 느리게 내어 궐산이 구월산으로 와전되었으며 구월산의 장당경藏唐京은 또 장장평藏藏坪으로 와전되었을 것이다. (<文獻備考> 13 輿地考1 歷代國界1)

 

그러나 위 기록은 추측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구월산의 는 단군조선의 국교인 덕교德敎에서 완성수를 의미하므로 단군조선의 대업이 완성이 되었다는 의미로 썼다고 본다.

 

조여적이 쓴 <청학집靑鶴集>에서는 조선의 신선의 선맥仙脈을 광성자廣成子-명유明由-한인-한웅-단군으로 밝히고 있다. 광성자는 광자에 황자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황궁黃穹(<부도지>에 기록된 삼신의 한 분인 궁희의 아들)을 왜곡하기 위하여 변조한 것으로 보이고, 명유明由는 음이 유라는 점으로 모아서 유인有因(<부도지>에 기록된 한인의 아버지)을 왜곡하기 위하여 변조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단군조선의 선맥을 다시 쓰면 황궁-유인-한인-한웅-단군이 된다. 이분 들 중에서 나라다운 나라를 세운 분은 한인· 한웅· 단군 세분이었다. 한인은 한국을, 한웅은 배달나라를, 단군은 조선을 세웠던 것이다. 선맥에서는 이 분들을 삼성三聖으로 호칭한다. 고열가 단군이 구월산에 은거하면서 전각을 지어 삼성을 모시며 제사지내고 그 안에서 수도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추론이 가능함으로 삼성당-삼성사를 지은 분이 고열가 단군임이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당시에 당주堂主를 일월마지할 때 무무巫舞를 출 수 있는 여무女巫로 하였는데, 당주를 여무로 한 것은 집의 주인이 여자이기 때문에 여무를 당주로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여무가 하는 일은 제상을 차리고, 무무를 추어 신명을 청배하여 대접하고, 함께 놀아드리고, 놀이가 끝난 다음에 보내드리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인근에 물자를 조달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야 하고, 물자를 조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하고, 무당들을 교육시키는 무당조직이 되어 있어야 하였다. 삼성당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고 살게 되자 이곳을 문화현이라고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문화란 말에서, 은 인간의 창조적인 능력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말한다. 인간의 창조적인 능력이 한 시대의 문명을 만들어내고, 그 문명에서 무엇인가를 생산해 낸다. 이것이 문화이다. 문화의 화는 인(사람)에게 칠성님(, 하나님)이 간섭하여, 인간의 내면에서 조화가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칠성님의 신명이 이 일을 한다. 그러므로 칠성님의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 만들어내는 문물의 총체를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상고시대에는 문화생산의 중심에 무당이 있었다. 무당이 주축이 되어 제사를 지내고 굿을 하면서 문화가 생겨났다. 구월산문화는 삼성당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문화이므로, 제사문화· 굿문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 중기에 평양에 삼성사三聖祠를 짓고 구월산의 삼성당을 폐당廢堂 하면서 문화현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괴질이 돌아 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민가가 텅 비게 되었다. (<성종실록> 15 성종 32월 임신)칠성님이 문화현에서 자신의 권능을 걷어가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성종실록>에는 나라에서 삼성제례를 기우제로 지내고 있으며, 제관은 현관縣官이 맞는다고 하였다. 신주는 한인천제신주를 남향으로 모시고, 한웅천왕 신주를 서향으로 모시고, 단군왕검 신주를 동향으로 모신다고 하였다.

 

한인천제를 남향으로 모시는 것은 천제가 적제赤帝이기 때문에 남향으로 모시는 것이고, 한웅천왕을 서향으로 모시는 것은 천왕이 태백산에 하강했기 때문에 서향으로 모시는 것이고, 단군왕검을 동향으로 모시는 것은 왕검이 황동태일皇東太一이기 때문에 동향으로 모시는 것이다.

 

구월산 삼성사는 조선왕조를 멸망시킨 일제가 헐어버렸고, 삼성사에서 해 왔던 봄가을의 제사도 중단되었다. 1997년부터 국고의 지원을 받아 이 제사를 삼각산에서 부활하여 요즈음 10월 개천제로 해 오고 있다. 제사의 이름을 삼성제라고 한다. 만약 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삼성제를 중단하게 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인가? 아마 그때는 서울에 괴질이 돌고 그 여파로 서울이 모두 공가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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