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5 06:55
【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거서간’의 새로운 해석
신라 건국시조의 정식명칭은 ‘박혁거세거서간(朴赫居世居西干)’이다. 박(朴)은 성씨, 혁거세(赫居世)는 이름, 거서간(居西干)은 왕호이다. 이들 명칭이 만들어진 배경과 역사에 대한 해석이다.
▲ 박(朴)은 ‘밝달임금’ 즉 단군(檀君) 계승을 천명한 성씨이다. 출처 : [신라역사의 명암] (2018,논형출판)
성씨 박은 광명사상과 단군계승을 천명
먼저 성씨 ‘박(朴)’이다. [삼국사기] 기록이다. ‘진한인(辰韓人)은 ’박(匏)‘을 ‘박(朴)’이라 하는데, 처음 커다란 알이 마치 박의 모양과 비슷하게 생겨 성을 ‘박’으로 하였다.(辰人謂瓠爲朴 以初大卵如瓠 故以朴爲姓)‘ [삼국사기]는 박(朴)의 어원을 조롱박(匏)에서 찾는다. 근거는 진한인이 조롱박을 박으로 불렀다는 이유이다. 조롱박(박)은 지난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지만 옛 초가집 지붕이나 담벼락에는 어김없이 박이 널려 있다. 또한 박을 둘로 쪼갠 바가지는 매우 유용한 생활도구이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곤도 세이쿄(権藤成卿)가 편찬한 일본을 비롯하여 한국, 중국의 역대왕조 흥망성쇠를 기록한 [팔린통빙고]가 있다. 박에 대한 설명이다. ‘박(朴)은 벌(伐) 또는 모(矛)와 같다. 혹은 호(瓠)의 뜻이다. 옛날에는 박을 배(舟)에 비유하였다.(朴同伐赫矛也 或爲之瓠之義 古以瓠喩舟)’ [팔링통빙고]는 박(朴)의 어원을 표주박(瓠)에서 찾는다. 표주박은 조롱박을 절반으로 쪼개어 만든 바가지이다. 근거는 옛날에 박을 배(舟)에 비유했다는 이유이다.
※ 참고로 [팔린통빙고]는 박혁거세를 출운(出雲-시마네현 이즈모)씨의 지족 일자근(日子根)의 아들로 설정한다. 박혁거세가 일본열도 출신이라는 얘기이다. 만들어진 역사이다.
두 사서는 공히 박(朴)을 박에 비유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삼국사기]는 조롱박(匏), [팔린통빙고]는 표주박(瓠)이다. 그럼에도 두 사서가 박혁거세의 성씨를 박에 비유한 점은 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영해박씨(박혁거세 직계후손)의 전승기록인 [소부도지](저자 박제상)는 전혀 다르게 설명한다. ‘박(朴)은 단(壇)의 음이 박달(朴達)이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여 성으로 삼았다.(朴者 壇之語音曰朴達故取之爲姓)’ [소부도지]는 박(朴)의 어원을 단(壇 : 檀의 오기인 듯)의 음인 박달에서 찾는다. 박달은 밝달이며 광명을 나타낸다.
※ [규원사화]<단군기>, ‘동방의 말에는 '단(檀)'을 일러 '박달(朴達)' 혹은 '백달(白達-배달)'이라고 한다.(東語謂檀曰朴達 或曰白達)’
그렇다면 어느 기록이 맞는 것일까?
[소부도지] 기록이 역사적 실체에 가깝다. 특히 단(檀)은 우리민족의 원조인 단군(檀君-밝달임금)과 맥을 같이 한다. [규원사화](저자 북애노인)는 ‘박혁거세는 단군의 먼 후손이다.(赫居世亦出於檀君之後)’고 기록하여 박혁거세가 단군을 계승한 사실을 명확히 지적한다. 다만 [삼국사기]와 [팔린통빙고]가 성씨 박을 박에 비유한 것은 전승기록이 다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조롱박은 진한계(진한출신 신라인)의 전승기록을, [팔린통빙고]의 표주박은 왜계(왜출신 신라인)의 전승기록을 따른 것이다.
이름 혁거세는 혈통내역의 비밀이 담겨
다음은 이름 혁거세(赫居世)이다. ‘赫’은 우리말 ‘밝’, ‘居’는 ‘있다.’, ‘世’는 세상을 뜻하는 우리말 ‘누리’이다. 혁거세는 세상을 밝힌다는 뜻의 ‘밝은 누리’이다. [삼국유사]는 혁거세를 ‘불구내(弗矩內)’와 같다고 설명한다. 불구내는 ’붉은 해’의 이두식 표현이다. ‘밝은 해’와 같다.
그러나 이름 혁거세는 한자적 해석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박혁거세의 혈통 비밀이 숨겨져 있다. 신라 화랑의 기원과 계보를 정리한 남당필사본 [위화진경](저자 미상)이 있다. 이에 따르면 박혁거세 아버지는 혁서거(奕西居)이며, 어머니는 파소(婆蘇)이다. 천신(天神) 혁서거가 파소 천왕(天王)과 합환하여 대일광명(大日光明-혁거세)를 낳는다.(#1[위화진경]기록)
#1. [魏華眞經]. 昔者 仙桃山 元始聖母 波穌天王 頭戴絳色金冠 身被銀色錦神衣內着紫黃綠四十九彩 率大瓢碧海加耶三仙姑乘彩雲 而下降 于仙桃山 千年老桃 梪王之宮 以爲六部之神 天神 乃率雷火風三神而下降 與聖母合歡 而娠大日光明 天神 是爲奕西居 於是 眞花發於吾土仙骨大昌
혁거세는 혁서거와 혈통상으로 직접 연결된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의 출신은 [태백일사](저자 이맥)에 나온다. 부여황실의 제실녀(공주)이다.(斯盧始王仙桃山聖母之子也 昔有夫餘帝室之女婆蘇…) 즉 북부여왕 5대 천제 고두막한(高豆莫汗)의 딸이다.
참고로 박혁거세 아버지 혁서거의 출신에 대한 단서가 남당필사본 [유기추모경](저자 황주량)에 나온다. 서기전24년 고구려 추모왕에게 사신을 보내 조공한 섭라국(涉羅國)여왕 혁거지(奕居知)이다. 섭라국은 북부여 제후국(열국)의 하나로 지금의 요동반도 남안에 위치한 여왕국이다. 특히 섭라국은 여왕이 지혜와 풍채가 뛰어난 남성을 폐신(嬖臣)으로 두고 딸을 낳으면 무녀(巫女)로 삼으며, 그 중 가장 나이 어린 딸이 다음 여왕을 승계하는 독특한 모계중심의 사회체제이다. 섭라국 혁거지여왕은 박혁거세 아버지 혁서거의 딸로 추정된다.
정리하면 다음의 추정이 가능하다. 섭라국 여왕 파소(*북부여왕 고두막한 딸)는 서기전70년(*박혁거세 출생년도) 이전에 섭라국 여왕에 봉해진다. 폐신 혁서거를 통해 딸 혁거지를 낳고, 또한 박혁거세를 임신한다. 그러나 어떤 사유로 파소는 섭라국 여왕 지위를 내려놓고 일부 무리와 함께 한반도로 이동한다. 이어 박혁거세를 출산하며 진한6촌과 결합한다. 그리고 서기전57년(*박혁거세 13세) 서라벌(신라)을 건국한다. 이때 섭라국은 파소의 뒤를 이어 혁거지가 여왕을 승계한다.
특히 박혁거세의 부계혈통만을 고려하면, 혁서거, 혁거지, 혁거세 등 3명은 모두 혁(赫 또는 奕)자로 시작한다. 박혁거세의 원래 성씨는 혁씨이다. 지금은 현존하지 않지만 과거 함경남도 안변에는 안변혁씨의 집성촌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안변은 신라의 비열홀(比列忽)이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신라 기림왕(15대)은 비열홀을 순행하며 몸소 나이 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곡식을 차등있게 내려 준다.(巡幸比列忽 親問高年及貧窮者 賜穀有差) 학계는 기림왕이 뜬금없이 경주에서 북쪽으로 수천리 떨어진 안변까지 찾아간 배경을 전혀 해석하지 못한다. 혹여 기림왕은 원조 혁서거의 또 다른 후손들을 찾아가 특별히 위무한 것은 아닐까?
▲ 박혁거세 어머니는 북부여출신 파소(섭라여왕), 아버지는 혁서거(섭라폐신)이다. 출처 : [신라역사의 명암] (2018,논형출판)
다만, 박혁거세의 원래 성씨가 혁씨라면 박의 성씨는 다른 판단을 해야 한다. 후대에 박혁거세의 시조역사를 재정립하면서 새로이 만들어져 첨가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이름 혁거세에는 박혁거세의 혈통내역이 담겨 있다.
왕호 거서간은 중국 한(漢)의 유민집단을 경계하는 방어장
마지막으로 왕호 거서간(居西干)이다. 거서간은 박혁거세 한 사람에게만 붙여진 특별왕호이다. [삼국지]<위서> 동이전에 삼한 소국의 군장 칭호 ‘거수(渠帥)’가 나온다. 거수는 거서와 어원이 같다.‘간(干)’은 북방유목민족이 사용하는 왕의 칭호이다. 따라서 거서간은 ‘왕 중의 왕’을 지칭한다. [삼국사기]는 진한(辰韓)말 ‘왕(王)’으로, [삼국유사]는 우리말 ‘거슬한(居瑟邯)’으로 설명한다. 모두 같은 의미이다.
그런데 [소부도지](박제상 찬술)는 거서간을 전혀 다르게 설명한다. ‘거(居)는 거(据)요 간(干) 은 방(防)이요 장(長)이다. 즉 서방(西方)에 의거하여 경계하는 방어장(防禦長)의 뜻이다. 서방은 서침(西侵)하여 사악한 도(道)를 행하는 자(者)를 말한다.(居者据也 干者防也長也 卽詰拒西方而防禦之長之意 西方者 卽彼西侵而行詐道者也)’ 서방은 낙랑지역(평안남도)의 중국 한(漢)의 유민집단을 가리킨다. 거서간은 한(漢)의 유민집단을 경계하는 방어장이다.
이는 신라 건국초기의 사정을 설명한다. 원래 한반도 낙랑지역은 진(秦)의 유민집단 망명지이다. 그런데 이후 망명해온 한(漢)의 유민집단이 진의 유민집단을 밀어내자 진의 유민집단은 남하를 서두른다. 이때 때마침 박혁거세(파소)집단이 한반도에 들어오고 진의 유민집단 일부인 진한6촌과 결합한다. 서라벌(신라)은 그렇게 해서 경기 북부지역에서 탄생한다. 박혁거세의 임무는 한의 유민집단 위협으로부터 서라벌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의 유민집단을 경계하는 방어장인 거서간의 특별왕호가 생겨난다.
▲ 거서간(居西干)은 한(漢)의 유민집단을 경계하는 방어장의 특별칭호이다. 출처 : [신라역사의 명암] (2018,논형출판)
결론적으로 성씨 박은 ‘밝달 임금’ 즉 단군계승의 천명이며, 이름 혁거세에는 혈통내역의 비밀이 담겨 있다. 또한 왕호 거서간은 신라 건국초기 역사를 함축한다. 누가 뭐래도 박혁거세는 명백한 신라의 건국시조이며 천년역사의 주인이다. 또한 박혁거세를 원조로 하는 박(朴)씨는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귀한 토속성씨이다.
글. 박찬우 시민기자 2019.09.03. 게시글】
-출처: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3834
【환단고기 삼성기에 고두막한이 부여의 옛 서울을 점령하고 동명이라 칭하고 신라의 옛땅이다 라고 나온다
<신라의 왕의 이름을 칸,간,한이라 불려진것과 북부여의 유민들이 신라로 이동한 것이다.>
<북부여의 나라이름은 해모수단군시절에 단군조선의 진한조선으로 마지막단군인 고열가단군 이후에 오가의 공화정을 종결시키고 북부여로 나라이름을 바꾼데서 유래하다.>
위만왕조가 옛조선의 유민들에게 망하고 4군이 설치되고 한이 쳐들어오는데...고두막한이 의병을 이르켜 나라를 세우면서 북부여를 계승하지만
해모수의 후손인 고우루 단군을 압박하여 죽게 만들고 아우인 해부루는 나라를 동쪽으로 옮기게 되는데 그것이 동부여이다. TV에서 나오는 부여는 동부여이다.
고두막한이후로 북부여는 쇠약하기 시작한다. 나라가 북부여,동부여 두개로 쪼개진 결과이다.
한반도로 많은 유민오게 된이유는 고열가단군때와 해모수단군이후로 대거 이주를 하고 위만정권으로 대거 이주하고 고두막한이후로 이주한다. 신라가 세워진 시점을 북부여가 세력이 약해지고 마한조선은 맹남즉위이후로 나라가 유명유실하게 되어 사라진다.
이때 상장군 탁이 한반도로 가서 삼한을 건설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한은 상장군 탁이 세운것이고 단군조선을 3개의 조선으로 나누어 다스리는데 마한조선, 번한조선,진한조선이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는 삼한을 남삼한으로 보기 때문에 동양에서 기록된 고서를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라인의 역사책이나 만주족(여진족)이 쓴 역사책에는
'신라의 옛서울은 지금의 만주 길림(吉林)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에 '선시조선유민'이라 한대목과 단군조선의 전삼한 시대가 무너진후 진조선지역의 만주에 살던 유민들이 후삼한의 진한땅, 경주지방으로 내려 왔다는 두가지 사실로 미루어 볼때, 사로국 신라의 원 거주지는 부여의 옛 서울인 길림지방이었음을 알수가 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북부여 황실의 혈통이라는 사실이 태백일사 고구려 본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고려때 이승휴는 제왕운기에서 시라(신라),구례(고구려),남북옥저,동북부여,예,맥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다"라고 하였다
참조- 태백일사-고구려 본기에
<사로의 시왕은 선도산의 성모의 아들이다.
북부여의 황의 딸 파소가 있었는데 남편없이 아이를 뱄으므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 눈수로부터 도망쳐 동옥저에 이르고 다시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나을촌에 와 닿았다 그때에 소벌도리라는자가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가서 집에 데려다 길렀다. 진한6부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여 거세간이 되니 도읍을 서라벌에 세우고 나라를 진한으로 하고 또한 사로라고도 하였다. ..>】
http://bitly.kr/gTB6C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