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4 06:48
사서에 기록된 이족 명칭
한민족 이족(夷族)은 사료기록 시기에 따라 그 당시에 불려진 이름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이미 기록된 사료를 재기록하는 과정에서 기록자의 편견이 들어가기도 하면서 한민족을 지칭하는 범위가 삼성(三聖)시대가 끝나고 우리 민족이 이합집산하며 열국시대가 전개되면서 많이 축소되는 과정을 밟아 사료에 언급되는 한민족 이족이 마치 다른 민족인 듯이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단고기』에서 전하는 ‘이(夷)’는 “彼謂我族爲夸”라고 기록하여 다른 민족이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自此 治尤高矢神誌之苗裔 繁衍最盛 及至治尤天王登極 造九治以採銅鐵 鍊鐵 以作刀戟大弩 以狩獵征戰 賴以爲神 遠外諸族 甚畏大弓之威 聞風膽寒者 久矣
故 彼謂我族爲夸 說文所謂夸从大从弓 爲東方人者 是也
乃至孔丘氏春秋之作 而夸之名 遂與戎狄 幷爲腥宥之稱 惜哉”-『한단고기』태백일사/신시본기
이때부터 치우, 고시, 신지의 후손들은 가장 번성하였다. 치우천왕의 등극에 이르러 구치를 만들어 구리와 철을 채취하고, 철을 단련하여 칼과 창과 큰 쇠뇌를 만들게 하셨다. 사냥을 하거나 전쟁을 할 때 이것에 신처럼 의지하니, 주위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대궁의 위력을 몹시 두려워하여 소문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진 지 오래 되었다.
그리하여 저들은 우리 민족을 가리켜‘이(夸)’라 불렀다.『설문해자』에 이른바,“이(夸)는‘큰 대(大)’자와,‘활 궁(弓)’자를 합한 글자로 동방사람을 뜻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그러나 공자가『춘추』를 지을 때 이라는 명칭을 융적과 함께 오랑캐의 칭호로 썼으니 애석한 일이다.
▸ 설문說文曰 夷從弓 東方之人也 이(夷)란 활을 뜻하니 (활을 잘 다루는) 동방의 사람이다
▸후한서後漢書曰 王制云 東方曰夷 夷者 也 言仁而好生萬物 地而出 故天性柔順 有君子不死之國焉
왕제(예기에서 주왕실의 제도를 기록한 편명)에 이르기를 동방을 가리켜 이라고 하니 곧 뿌리를 말함이며, 이는 말이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며 땅에 의지하여 만물과 함께 살았으므로 천성이 유순하여 군자의 죽지 않는 나라이다
▸『후한서』에는 “견이畎夷 · 우이于夷 · 방이方夷 · 황이黃夷 · 백이白夷 · 적이赤夷 · 현이玄夷 · 풍이風夷 · 양이(陽夷)”를 구이九夷라고 하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 193권 당기(唐紀) 9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中國如根本四夷 중국의 근본은 사이(四夷)다.
자치통감 195권 당기(唐紀) 11권에는, 중국근간야사이지엽야(中國根幹也四夷枝葉也)라고 되어있다. 이 뜻은 중국 사람들의 뿌리는 사이(四夷)의 가지와 잎에 해당한다는 것을 말한다.
▸삼국유사에 나타나 있는 구이(九夷)를 살펴보면 ①현도(玄菟) ②낙랑(樂浪) ③고려(高麗) ④만식(滿飾) ⑤부유(鳧臾) ⑥소가(素家) ⑦동도(東屠) ⑧왜인(倭人) ⑨천비(天鄙)로 되어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마한(馬韓)편에는, 구한(九韓)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①일본(日本) ②중화(中華) ③오월(吳越) ④둔라(屯羅) ⑤응유(鷹遊) ⑥말갈(靺鞨) ⑦단국(丹國) ⑧여진(女眞) ⑨예맥(穢貊).
▸산해경 찬山海經讚曰 東方氣仁 國有君子 동방의 기운은 어질어서 그 나라에 군자가 있다
▸이아爾雅曰 東至日所出 爲太平 太平之人仁 동방은 해가 돋는 곳이니 태평할 것이오, 태평한 곳 사람은 어질 것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曰 東方之夷有九種 동방의 이(夷)는 아홉 종족이 있다
▸”九夷考曰 東夷有九種 曰 黃白玄赤藍陽于方 黃居大荒原 白居沙漠間 赤居沿海岸 玄居黑水濱 藍居群島中 于陽居原山之東南 方居原水之西北“-대종교 경전인 『신사기』
구이고에 '동이에 아홉 겨레가 있으니 황백현적남양우방견인바, 황(黃)은 대황원(남만주 평원)에 살고, 백(白)은 사막에 살고, 적(赤)은 바닷가(연해주 연안)에 살고, 현(玄)은 흑수(흑룡강)가에 살고, 남(藍)은 뭇 섬(발해만 연안)에 살고, 우(于)와 양(陽)은 원산(백두산) 동남에 살고, 견과 방(方)은 원수(송화강) 서북쪽에 살았다
* 《한서지리지》에서는 래무가 원산原山이라 하였고, 원산은 치수가 나오는 곳이라 하였으니, 구이고에 우이와 양이는 산동성 래무현이 아닐까 한다.
죽서기년竹書紀年曰 征于藍夷 남이(藍夷)를 치다
▸동래집東萊集曰 藍夷卽風夷 남이는 곧 풍이(風夷)
▸급총주서汲冢周書(曰 良夷在子 註曰 良夷樂浪之夷
양이(良夷)는 자(子;북쪽 방향)에 있다'고 일렀고, 그 주에 '양이는 낙랑에 사는 이(夷)다
▸풍속통風俗通曰 九夷 一曰 玄 二曰 樂浪 三曰 高驪 四曰 滿飾 五曰 鳧臾 六曰 索家 七曰 東屠 八曰 倭人 九曰 天鄙
구이는 첫째 현토, 둘째 낙랑, 셋째 고려, 넷째 만식, 다섯째 부유, 여섯째 색가, 일곱째 동도, 여덟째 왜인, 아홉째 천비
▸ 『논어』「자한편子罕篇」의 “자욕거구이子欲居九夷” 서疏에는 “ 1.현도玄菟, 2.낙랑樂浪, 3.고려高麗, 4.만식滿飾, 5.부유鳧臾, 6.색가索家, 7.동도東屠, 8.왜인倭人, 9.천비天鄙”를 구이九夷라고 말하였다.
▸순오지旬五志曰 古有九種夷 其君自檀君始
옛적에 아홉 갈래의 이(夷)가 있었으니, 그 임금은 단군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청학집靑鶴集 卞沚壽記曰 四聞錄云 檀君化行有年 九夷共尊之 立爲天王
사문록에 이르되 단군의 교화가 행해진지 오래됨에 구이가 함께 높이어 세워 천왕으로 되셨다
▸해동역사海東繹史曰 朝鮮世紀云 檀君神明 九夷君之
조선세기에 이르되 단군이 신명하여 구이가 임금으로 삼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인용한『단군고기』의 기록에 보이는 “조선朝鮮 · 시라尸羅 · 고례高禮 · 남옥저南沃沮 · 북옥저北沃沮 · 동부여東夫餘 · 북부여北夫餘 · 예濊 · 맥貊은 단군 건국시기에 활동한 9개 동이東夷 부족국가 즉 구이九夷를 가리킨 것이라고 하겠다.
【▸견이畎夷ㆍ우이于夷ㆍ방이方夷ㆍ황이黃夷ㆍ백이白夷ㆍ적이赤夷ㆍ현이玄夷ㆍ풍이風夷ㆍ양이陽夷(≪후한서≫)
▸견이畎夷ㆍ우이嵎夷<바로 우이于夷다.>ㆍ방이方夷ㆍ황이黃夷ㆍ백이白夷ㆍ적이赤夷ㆍ현이玄夷ㆍ남이藍夷<바로 풍이風夷다.>ㆍ양이暘夷<바로 양이陽夷다.>(≪동래집東萊集≫ ; < >은 한치윤의 주(註))
▸현토玄兎ㆍ낙랑樂浪ㆍ고려高驪ㆍ만칙滿飭ㆍ부유鳧臾ㆍ색가索家ㆍ동도東屠ㆍ왜인倭人ㆍ천비天鄙라고도 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부유는 바로 부여夫餘다.>(≪풍속통風俗通≫ ; < >은 한치윤의 주(註))
▸장이長夷ㆍ조이鳥夷(≪사기≫)
▸기주冀州의 도이島夷<삼가 살펴보건대, 도이가 ≪사기≫에는 조이鳥夷로 되어 있다.>(≪상서尙書≫ ; < >은 한치윤의 (註))
양이良夷(≪급총주서汲冡周書≫)
▸선모鮮牟는 동이의 나라이다.(≪국어해國語解≫)
▸서이徐夷ㆍ회이淮夷ㆍ사이泗夷(≪후한서≫)
▸군자국君子國ㆍ청구국靑邱國ㆍ한안韓雁ㆍ시구始鳩(≪산해경山海經≫과 ≪산해경찬山海經贊≫)】
【】은 한치윤이 지은 ≪해동역사≫ <동이총기>에 나오는 동이 이름들임.
이 외에도 사서에 언급된 자료가 있으면 댓글로 모아보겠습니다.
2018.04.18 06:06
2018.07.28 15:37
규원사화의 이(夷)-三氏苗裔
“三氏苗裔, 又細分九派, 卽畎夷. 嵎夷. 方夷. 黃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暘夷之屬, 皆異支同祖, 不甚相遠. 夷之爲言, 大弓之稱也. 盖自蚩尤氏作刀. 戟. 大弩以後, 狩獵征戰, 賴以爲武, 中土諸族, 甚畏大弓之用, 聞風膽寒者久矣. 故謂我族曰夷.《說文》所謂: 「夷, 从大从弓, 東方之人」者, 是也. 乃至仲尼《春秋》之作, 而夷之名, 遂與戎狄幷爲腥조之稱, 憤哉! 後世畎夷, 風夷, 分遷西南, 恒與中土諸族, 互相頡頏, 風夷則卽蚩尤氏之一族也.”-『규원사화』태시기
삼씨(三氏)의 후예들은 또한 아홉 갈래로 자세하게 나누어지는데, 곧 견이(畎夷)·우이(嵎夷)·방이(方夷)·황이(黃夷)·백이(白夷)·적이(赤夷)·현이(玄夷)·풍이(風夷)·양이(暘夷)의 무리들이 모두 같은 조상의 다른 가지일 뿐, 서로 그리 멀지는 않다. ‘이(夷)’자는 큰 활을 지칭하는 것이다. 치우씨가 칼과 창이며 큰 쇠뇌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로 사냥하고 전쟁함에 있어서 이러한 것을 병장기로 삼으니 중토의 뭇 부족들이 큰 활의 쓰임을 매우 두려워하였으며, 그 위풍을 듣고 간담이 서늘하곤 한 지가 오래되었기에 우리 민족을 일컬어‘이(夷)’라고 한 것이다.《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르기를“이(夷)는‘크다(大)’는 것과‘활(弓)’에서 유래하였으며, 동방의 사람을 말한다”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중니가 《춘추》를 짓기에 이르러 이(夷)의 이름을 마침내 융(戎)이나 적(狄) 등과 아울러 비속한 명칭으로 삼아 버리니, 분할 따름이다. 뒷날 견이와 풍이는 따로 서남으로 옮겨가서 항시 중토의 여러 부족들과 서로 엎치락 뒷치락 세력을 다투었는데, 풍이는 바로 치우씨의 일족이다.
“初, 神市之末, 蚩尤氏兄弟, 雖自涿鹿退歸, 而東人之占居淮岱者甚多, 與漢土之人雜處, 農蚕織牧, 資以爲業. 且, 南鄙海島之民, 皆以蠙珠魚貝, 相交易於漢土, 稍稍住息於濱海之地. 至是海岱.江淮之地, 遂爲其州里, 與漢土之民, 交(遊)[游]而錯居.《尙書》所稱, 嵎夷. 萊夷. 淮夷. 島夷者, 皆是也.”-『규원사화』檀君紀
처음 신시씨의 말기에 치우씨의 형제가 비록 탁록으로부터 물러나서 돌아왔으나 동방의 사람으로 회대(淮岱) 지역을 차지하고 생활한 자가 매우 많았으니, 한나라 땅의 사람들과 섞여 거처하면서 농사짓고 누에치며 길쌈하고 가축을 기르는 것을 밑천으로 하여 생업을 삼았다. 또한 남쪽 지방의 바다섬 백성들은 모두 진주와 물고기 및 조개 등으로 한나라 땅에서 서로 교역하더니, 차차 해변의 땅에 머물러 살게 되었다. 이에 이르러 해대(海岱)와 강회(江淮)의 땅에는 마침내 마을을 이루어 한나라 땅의 백성들과 교류하며 섞여 살게 되니,《상서(尙書)》에 이른바 우이(嵎夷)와 래이(萊夷) 및 회이(淮夷)와 도이(島夷)등이 모두 그들이다.
『한단고기』에 언급되는 이(夷)
“自此 治尤高矢神誌之苗裔 繁衍最盛 及至治尤天王登極 造九冶以採銅鐵 鍊鐵 以作刀戟大弩 以狩獵征戰 賴以爲神 遠外諸族 甚畏大弓之威 聞風膽寒者 久矣
故 彼謂我族爲夷 說文所謂从大从弓 爲東方人者 是也
乃至孔丘氏春秋之作 而之名 遂與戎狄 並爲腥臊之稱 惜哉”『한단고기』태백일사/신시본기
이때부터 치우(治尤), 고시(高矢), 신지(神誌)의 묘예(후손)들은 가장 번성하였다. 치우천왕의 등극에 이르러 구야를 만들어 구리와 철을 채취하고, 철을 단련하여 도극 대궁을 만들게 했다. 사냥을 하거나 전쟁을 할 때 이에 힘입어 신(神)이 되니, 멀리 있는 모든 족속들이 대궁의 위력을 심히 두려워하여 소문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진 지 오래 되었다.
그리하여 저들은 우리 민족을 가리켜 ‘이(夷)’라 불렀다. 설문(說文)에 이른바,“이(夷)는‘큰 대(大)’자와,‘활 궁(弓)’자를 합한 글자로 동방사람을 뜻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그러나 공자 구씨가 춘추를 지을 때 이(夷)라는 명칭을 융적과 나란히 오랑캐의 칭호로 썼으니 애석한 일이다.
2018.07.30 06:05
『후한서(後漢書)』85권 동이열전(東夷列傳) 에서 말하는 '이(夷)'의 의미
“王制云 東方曰夷 夷者柢也. 言仁而好生. 萬物柢地而出. 故天性柔順. 易以道御. 至有君子. 不死之國焉. 夷有九種. 曰 夷. 于夷. 方夷. 黃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 『후한서(後漢書)』85권 동이열전(東夷列傳)
동방을 이(夷)라 한다. 이(夷)는 저(柢)이다. 말이 어질고 (생명) 살리기를 좋아한다.(言仁而好生) 만물의 뿌리가 땅속에서 나오듯 고로 천성이 유순하다. 역(易)과 도(道)를 익혀 군자에 이르러 죽지않는(끊이지 않는) 나라이다. 이(夷)는 아홉 종이 있다. 견이(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의 아홉 부족이다.
『설문해자』의 '夷'
【卷十】【大部】夷
平也。從大從弓。東方之人也。以脂切文十八
「說文解字注」
(夷)東方之人也。從大。從弓。各本作平也,從大從弓,東方之人也。淺人所改耳。今正。韻會正如是。羊部曰。南方蠻閩從蟲。北方狄從犬。東方貉從豸,西方羌從羊。西南僰人,焦僥從人。葢在坤地頗有順理之性夷。惟東夷從大,大,人也。俗仁。仁者壽。有君子不死之國。按天大,地大,人亦大。大象人形。而夷篆從大。則與夏不殊。夏者,中國之人也。從弓者,肅愼氏貢楛矢石砮之類也。以脂切。十五部。出車,節南山,桑柔,召旻傳皆曰。夷,平也。此與君子如夷,有夷之行,降福孔夷傳夷易也同意。夷卽易之叚借也。易亦訓平。故叚夷為易也。節南山一詩中平易分釋者,各依其義所近也。風雨傳曰夷悅也者,平之意也。皇矣傳曰夷常也者,謂夷卽리之叚借也。凡注家雲夷傷也者,謂夷卽痍之假借也。周禮注夷之言屍也者,謂夷卽屍之叚也。屍,陳也。其他訓釋皆可以類求之。
[해석: 각 판본에는 「평평하게 하다는 뜻이며, ‘大’에서 유래하였고 ‘弓’에서 유래하였으니 동방의 사람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생각이 얕은 사람이 고친 것이므로 지금 바로잡는다. 운회에서도 바로 이와 같다. 양부에 이르기를 「남방의 ‘蠻(만)’,‘閩(민)’은 벌레(蟲)에서 유래되었고, 북방의 ‘狄(적)’은 개(犬)에서 유래되었고, 동방의 ‘貉(맥)’은 ‘豸’에서 유래되었고 서방의 ‘羌(강)’은 ‘양(羊)’에서 유래되었다. 서남 종족을 가리키는 ‘僰人’,‘焦僥’는 ‘人(사람)’에서 유래되었다」 고 하였다. 대개 땅에 순응하고 순리를 따르는 성품의 이(夷)다. 오직 동이(東夷)가 ‘크다’에서 유래되었고, 대인(大人)이다. 풍속이 어진데 어질다는 것은 장수를 의미한다.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이다.(군자가 끊이지 않는 나라이다.) 생각컨대 하늘은 크고도 존귀하며 땅도 크고 존귀하며 사람 역시 크고 존귀하다. ‘大’자는 사람의 형상을 본뜬 것인데 ‘夷’의 전체(篆體)가 ‘大’자에서 유래되었다. 즉 하(夏)와 더불어 다르지 않다. 하(夏)는 중국 사람을 말한다.
‘弓’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숙신씨가 고시,석노류를 헌납한 것을 말한다. 『시경』의 <出車>,<節南山>,<桑柔>,<召旻> 등의 모전(毛箋)에서는 모두 ‘夷’를 ‘平’이라 하였다. 이러한 것과 ‘군자가 만일 공정히 했더라면’,‘평탄한 길이 남으니’,‘복을 내려도 매우 크리라’등의 모전에서 ‘夷’를 ‘易’이라 한 것은 같은 뜻으로서 ‘夷’는 ‘易’의 가차자(假借字)임을 말한다. ‘易’역시 글자의 뜻이 ‘평평이 하다’로 ‘夷’자를 빌어 ‘易’의 가차자로 삼았음을 말한다. 『시경』<節南山>의 시에서 ‘平’과 ‘易’을 나누어 풀이한 것은 각각에 그 가까운 뜻에 의거한 것임을 말한다. 『시경』정풍의 <風雨>에서 夷는 常이다」라고 한 것은 ‘夷’가 곧 ‘이(?)’의 가차자임을 말하는 것이다. 무릇 주석에서 「‘夷’는 ‘傷’이다」라고 한 것은 ‘夷’가 곧 ‘痍’의 가차자임을 말하는 것이다. 『주례』의 주석에 「‘夷’는 ‘尸’를 말한다」고 한 것은 ‘夷’가 ‘尸’의 가차자임을 말한다. ‘尸’는 ‘펼쳐 놓음’을 맣나다. 그 외의 뜻으로 풀이한 것들도 모두 이러한 유형에서 그 뜻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구이(九夷)
펌자료【구이(九 夷)는 흔히 아홉가지 이족(夷 族)을 의미하는 말로 알려져 있다.『후한서(後 漢 書)』동이전(東 夷 傳)에 구이의 구체적 명칭으로 견이(畎 夷)·우이(于 夷)·방이(方 夷)·황이(黃 夷)·백이(白 夷)·적이(赤 夷)·현이(玄 夷)·풍이(風 夷)·양이(陽 夷)가 나온다. 그런데『논어(論 語)』자한편(子 罕 篇)의 “자욕거구이(子 欲 居 九 夷)”,『국어(國 語)』노어하(魯 語 下)의 “통도우구이백만(通 道 于 九 夷 百 蠻)”,『상서(尙 書)』와『이아(爾 雅)』등에 나오는 구이는 반드시 동이족의 9종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구(九)는 고대 중국인들이 많다는 것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했던 용어로, 구이의 구는 실제 아홉을 나타낸다기 보다는 ‘많다’는 의미를 갖는 형용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논어정의(論 語 正 義)』등에는 구이의 명칭이 현토(玄 菟)·낙랑(樂 浪)·고려(高 麗)·만식(滿 飾)·부유(鳧 臾)·소가(素 家)·동도(東 屠)·왜인(倭 人)·천비(天 鄙)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편 동이와는 별도의 표현으로 이해되는 범칭(凡 稱)으로서의 ‘이(夷)’를 사용한 우이(嵎 夷)·화이(和 夷)·도이(島 夷)·회이(淮 夷)·서이(徐 夷)·주이(邾夷)·개이(介 夷)·거이(莒 夷)·기이(杞夷)·내이(萊夷)·패이(郥夷)·여이(黎 夷)·관이(串夷) 등의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구이는 중국 고대에 존재했던 동이 집단들을 전체적으로 일컫는 명칭으로 더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구이의 명칭이 문헌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시간의 추이에 따라 구이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념이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실제로 이의 종족이 단지 아홉 개만 있었던 것은 아니며 적어도 이 집단 중 대표적인 것이 아홉 개 정도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는 구이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구한(九 韓)’이라는 표현이 있었음이『삼국유사(三 國 遺 事)』에 나타나 있다. 즉, 황룡사구층목탑(皇 龍 寺 九 層 木 塔)의 각 층에 대응되어 신라가 극복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해동안홍기(海 東 安 弘 記)」에 일본(日 本)·중화(中 華)·오월(吳 越)·탁라(托 羅)·응유(鷹 遊)·말갈(靺 鞨)·단국(丹 國)·여적(女 狄)·예맥(濊 貊)이 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후한서(後漢書)』
『이아(爾雅)』
「구이(九夷)와 동이(東夷)」(김시황, 『동방한문학』17, 1999)
『한국민족문화(韓國民族文化)의 기원(起源)』(김정배, 고려대학교출판부, 1973)
「동이(東夷)와 회이·서융(淮夷·徐戎)에 대하여」(金庠基, 『동방학지(東方學志)』2, 195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http://encykorea.aks.ac.kr/저자/제공처한국학중앙연구원 http://www.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