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8 12:55
한국 시대부터 이어져온 강족(羌族)의 역사
5湖(흉노,선비,갈,저,강)中에서 강족(羌族)
강족(羌族)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중의 하나로 분포지역이 광범위하여 많은 영향을 미친 중국의 서쪽 변경지대에 거주하는 티베트계 유목민족이다. 그들은 원래 농목을 겸하는 부락이었다. 강족은 주로 양(羊)을 길렀으며 강족의 羌자도 羊과 人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한다. 지금의 섬서,감숙,청해,티벳,사천,영하지역에 분포해있던 염제의 후손이며, 구이(九夷)중의 하나이다.
시 대 |
연 대 |
지 리 |
인 물 과 사 건 |
한국 말기 |
B.C.7,199 ~B.C.3,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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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족이 있어 걱정거리였다. 한인은 마침내 삼신으로서 가르침을 만들고 전계를 베풀어 무리를 모아 서약을 시켜 상주고 벌하는 법을 갖게 하였다." <삼성기하편 밀기> |
단군세기 색불루 단제기20년조 |
B.C. 1,285 |
빈,기지방 |
"구려 무리들이 중국의 빈과 기 지방에 세운 명칭이 여(黎)로 적혀있다." |
갑골복사 (甲骨卜辭)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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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허(殷墟) |
"강(羌)에 관련된 복사가 다량 포함되어 있다." |
국어<國語> 좌전<左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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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상류 감숙성 청해성 |
"화하(華夏)와 근원을 같이 한다." 화화족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황제, 염제중 염제가 강족의 선조 |
은(殷) |
B.C. 1,600 |
서북, 중원 |
강족을 노예로 부렸지만 강족의 수령만은 관리로 임명. |
주(周) 무(武)왕 |
B.C. 1,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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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족을 포함한 주변부족과 군사연맹을 맺어 포악한 은나라 왕조를 몰아냄. 강태공은 강족 출신이다. |
춘추시대 |
B.C. 722~221 |
사천성일대 |
사천성 일대를 지배하며 그 세를 운남에까지 뻗쳤다. *사천성:춘추전국시대에파(巴),촉(蜀)에 속함. 촉(B.C.231)나라에는 강족이 살았음. 중국의 입장으로는 서융이라 칭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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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5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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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晉)나라 사람들과 빈번이 왕래하고 서로 영향을 주어 함께 산림 개발이나 생산 발전을 위하여 협력 |
전국시대 |
B.C. 4세기 |
민강상류 청장고원 |
일부분 강족들이 서남과 서북으로 이주하기 시작함. |
진(秦)나라 통일무렵 |
B.C. 22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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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작은 부족들로 나누어 유목 생활을 함. 흉노족의 지배를 받음. |
한(漢) 무제 |
B.C. 14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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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에 거주하던 많은 수의 강족이 내륙으로 이주. 한족에 의해 동화과정을 겪음. 농업체 종사하는 수가 증가하고 사유제도도 약간 있어 봉건제도의 굴레에 접어듬. |
전한(前漢) 선제 |
B.C. 74~49 |
전한위치 |
강족이 전한에 쳐들어가 패함. *고사성어 : 百聞 不如 一見 |
동한(東漢) |
A.D. 25~220 |
사천성,신강 |
청해 해안현인 서해군을 중심무대로 하다가 사천성,신강성등에 150여개 부락을 만들어 흩어져 거주. |
후한(後漢) 안제 |
A.D. 106~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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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계 강족이 후한 왕조측의 강족에 대한 가혹한 병역징발 때문에 반란 일으킴. 반란의 주요 무대는 병주(산서)와 양주(감숙,섬서). |
위진(魏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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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곡혼에게 정복당함. 촉의 서쪽 경계의 심산유곡 혹은 청해로부터 서장에 들어감. |
5호 16국 |
A.D.304~417 |
장안 중국내륙 으로진출 |
386년 요장은 전진을 계승하여 장안에 후진을 세움. 북위와 동진의 양대국사이에 위치. 417년 동진에 멸망. |
수. 당 시기 |
A.D.589~907 |
민강상류 |
한족과 투루간의 연결고리 역할. 소금, 차, 천,생산공구와 변방의 말, 약재, 가죽등이 상호교역에 큰 공헌을 함. |
수말(隋末)기 |
A.D. 618 |
사천,서장 청해성 |
강족 가운데의 당항족(1))이 맹위를 떨치기시작. |
당(唐)왕조 |
A.D. 618~ |
감숙동부 섬서서부 |
강족의 상당 부분이 당나라에 편입되거나 투루정권의 통치하에 들어감. 강족 본류는 토번 왕조를 건립.세력을 강화해당항족을 괴롭히기도 함. 당항족이 황소 농민의 난 진압, 강대한 지방 할거 세력으로 자람. |
서하국 |
A.D. 1,032~1,227 |
중국북서 오르도스지방 |
약 200년간 존속한 탕구트족 국가. 동서 교통의 요로, 산염이 중요 산물의 하나, 서하어 종교:유교(지배층), 불교 티베트풍의 불교미술회화가 하라호트와 둔황등지에서 발견 |
현재 (現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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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부변경 |
중국서쪽 변경지대에 거주하고 있는 장족(藏族)도 강족의 일파. |
● 당항족(탕구투족)은
- 강족의 한갈래
- 청해성 동남부 황하 유역에서 활동함.
- 6세기에 번성(수나라시대)
- 당대말기 중앙의 통치 역량이 쇠약해져 당항족 우두머리 탁발사공이 군대 동원하여 황소의 난 진압하여, (A.D.875~884) 당 희종이 그 공으로 이씨(李氏)성을 하사함.
- 송나라초, 이원호가 서하국(西夏國 A.D.1,032~1,227) 건국 하여 송을 위협.
위진남북조 시대 도래.
- 당나라 초 : 감숙동부, 섬서서부일대로 쫓겨감.
강(羌)족 - 탕창(宕昌)
강(羌)족은 그 선조가 삼묘(三苗) 의 후예로 주대에는 용(庸), 촉(蜀), 미(微), 노(盧) 등 8국과 함께 무왕(武王)을 따라 상(商)나라를 멸망시켰으며, 한대(漢代)에는 선령(先零), 소당(燒當) 등의 부족이 있어 대대로 변방의 우환이었다. 그 땅은 동쪽으로 중국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서역과 연결되어 있어, 남북으로 수천리에 달한다. 성(姓)에 따라 각자 부락을 이루고 살며, 추장들은 모두 각자 경계 지어진 땅을 소유하고 있어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탕창(宕昌)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 풍속은 모두 정착해서 땅에 의지해 살며, 가옥에 거주하고 그 지붕은 야크[犛牛] 꼬리털과 양털로 짠 천을 덮는다. 나라에는 법령이 없고 또 요역이나 부세도 없다. 다만 전쟁을 할 때 서로서로 모여 진을 치며 전쟁을 하지 않을 때에는 각자 생업에 종사하며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모두 피혁과 삼베로 만든 옷을 입는다. 야크(犛牛), 양(羊), 돼지[豕]를 키워 식량으로 제공한다. 부자(父子), 백숙(伯叔), 형제(兄弟)가 죽으면 계모(繼母), 세숙모(世叔母) 및 형수[嫂], 제수[弟婦] 등을 처로 삼는다. 그 나라 풍속에 문자는 없으나 다만 초목의 영락(榮落)을 관찰하여 세시(歲時)를 기록한다. 3년에 한 번 모두 모여 소와 양을 죽여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탕창(宕昌): 『梁書』 「諸夷傳」에는 “탕창국은 하남국의 동남쪽, 익주의 서북쪽, 농서의 서쪽에 있으며 강족이다(宕昌國, 在河南之東南, 益州之西北, 隴西之西, 羌種也).”라고 하였다. 晉 말기에 西羌의 별종이 건국한 나라로 그 땅은 현재 甘肅省 岷縣 남쪽에 해당한다. 전성기에는 岷縣과 臨潭縣 남부에서 天水 西界에 이르는 땅과 武都北界의 땅을 점령하였다. 北周 때 그 땅을 郡으로 삼았으며 唐代에는 宕州라고 하였다.
선령(先零): 西羌 중 최대의 부락이다. 이들은 원래 賜支河谷 양안의 大小楡谷(현재 靑海省 貴德縣 서쪽)에 거주하다가 前漢 초 일부가 湟水 이남으로 발전하였고 얼마 안 있어 湟水 이북까지 진출하였다. 또 일부는 서쪽 靑海 鹽池 부근까지 진출하였다. 後漢 초에는 先零부족은 점차 동진하여 金城郡 동부와 漢陽(天水) 및 扶風 등지까지 이르렀다. 자세한 내용은 『後漢書』 권87 「西羌傳」 참조.
소부(燒當): 無戈爰劍의 13대 孫이 추장이 되었는데 그 이름을 따 國名으로 삼았다. 大允谷(현재 靑海省 내)에 거주하였고 목축을 생업으로 하였다. 後漢代 大小楡谷(현재 靑海省 북부와 甘肅省 서부)으로 확장하면서 토지가 비옥하여 농목업으로 발전하였고, 또 서해의 어염의 이익을 얻게 되면서 羌族 중 으뜸이 되었다. 後漢 和帝 때 漢에 귀부하였고 그 추장 滇吾가 隴西와 漢陽, 安定 각지로 內徙하였다. 五胡十六國시대 長安에 건국한 後秦이 그 후예이다.